생각의 편린들

맘카페의 마녀사냥 그리고 맘충

새 날 2018. 10. 1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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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의 한 맘카페에 올라온 글 하나로 인해 모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텍스트가 날카로운 흉기로 돌변,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이 비극의 단초 역시 사실 별것 아닌 대목에서부터 비롯됐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인 양 인터넷에 떠벌리고, 해당 글을 본 카페 회원들이 흥분하여 피해자를 비난하다가 마침내 신상을 털어 이를 퍼나르기하면서 마녀사냥에 나선 결과물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더욱 진가가 발휘된다는 SNS 등의 소통도구, 이들을 배경으로 촘촘하게 얽힌 초연결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근래 이러한 과정은 안타깝게도 아주 흔한 루틴이 돼버렸다. 확인되거나 검증되지도 않은 사실을 자극적으로 포장하여 무한 확산을 가능케 하는 도구 위에 올려놓은 뒤 무언가를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무한정 퍼나르기되면서 일파만파 확산되는 절차 따위 말이다.

 

다만, 이번 사건은 피해자가 비난을 참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우 극단적인 결과라는 사실 만으로도 여타의 사건들과는 결이 사뭇 달리 다가온다. 게다가 그 주체가 맘카페라는 사실은 최근 이들을 둘러싼 각종 잡음이 심하게 불거지고 있는 마당이라 어느덧 그들을 공공의 적으로 둔갑시키고 있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맘카페를 폐쇄해달라는 청원글이 올라와 단 하루 만에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에 참여할 정도로 관심이 폭증하고 있는 양상이다.

 

ⓒ연합뉴스

 

육아는 쉽지 않다. 아니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맘카페는 육아를 기반으로 하는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다. 맘카페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다. 힘든 육아를 매개로 하는 덕분에 여타의 커뮤니티보다 더욱 끈끈하고 돈독한 관계 형성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 네이버와 다음 등 대형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맘카페만 해도 대략 2만5000개에 달하며, 그 가운데 회원 수가 10만 명을 넘는 카페가 무려 5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웬만한 지역에는 이 맘카페가 적어도 하나씩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카페 활동을 통해 회원이 올린 글에 공감을 표시해주면서 평소 힘들어하던 육아와 가사 노동이라는 고단함을 따스하게 위무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측면으로 보자면 맘카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자영업자들에게 있어 맘카페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자영업자와 맘카페가 도대체 무슨 관계에 놓여있길래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대부분의 영세 자영업자는 전적으로 지역 소비자의 입소문에 의지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처지에서 일부 맘카페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앞세울 경우 자영업자들은 도리 없이 약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육아 및 생활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공유하면서 맘카페는 응당 따뜻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나, 이렇듯 규모가 커지고 영향력이 방대해지자 도리어 자꾸만 잡음만 일으키는 형국이다. 

 

얼마 전 가짜 유기농 쿠키를 진짜 유기농 수제 쿠키인 양 홍보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미미쿠키 사건도 알고 보면 이들의 영향력과 관계 있으며, 경기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모 맘카페에서는 태권도 학원 차량이 난폭운전을 했다며 카페에 공개하겠노라 협박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논란으로 불거졌다. 이들의 갑질은 흔히 예상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곤 한다. 맘카페 회원임을 내세워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손해를 끼치게 할 것이라는 등의 공공연한 협박은 물론, 때로는 카페에서 널리 홍보해주겠다면서 특정 대가를 바라거나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따위의 방식이다.

 

ⓒ연합뉴스


마녀사냥으로 입은 피해는 혹여 나중에 진실과 실체가 낱낱이 밝혀진다 해도 이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명예가 회복된다 한들 이번 사건처럼 누군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던진 상황이라면 복구는 더더욱 요원하다. 비단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연루가 되어있지 않더라도 모든 맘카페 회원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깊은 반성이다. 육아 정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에 걸맞지 않게 갑질을 휘둘러 왔거나, 진위 여부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안을 마치 사실이기라도 한 양 여론몰이를 일삼고 심지어 신상 공개까지 벌여온 일탈 행위에 대해 우선 자중하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빌미로 맘카페 회원들을 향해 '맘충'이라 싸잡아 표현하면서 혐오와 비하의 인식 틀에 가두어놓으려는 사회 일각의 시도 역시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가뜩이나 맘카페를 향한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현실에서 이번에 불거진 어린이집 보육교사 사건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다. 인과관계를 부인하려 애를 써도 '맘카페=맘충'이라는 등식으로 자꾸만 수렴해가는 형국이다. 


 

근래 청소년들의 강력 범죄와 일탈 행위가 극에 달하면서 청소년 계층을 향한 혐오 인식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일부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임에도 대중들은 '청소년=급식충'이라는 등식을 통해 모든 청소년들을 싸잡아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맘카페=맘충'이라는 등식 역시 이러한 현상과 비슷한 맥락이다. 비록 일부의 일탈임에도 어떤 대상 전체를 특정 인식의 틀에 가둔 채 이들을 향해 무턱대고 행해지는 비난은 어쩌면 현재 비난의 빌미를 제공한 그들이 저지른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결과는 자칫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 우리 스스로의 목을 겨눌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맘충으로 불릴 만큼 눈살 찌푸리는 행위를 일삼는 엄마들, 물론 일부 존재한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엄마, 즉 모든 맘카페 회원들이 맘충일 수는 없다. 맘카페 회원들의 마녀사냥을 질타하면서 자칫 우리 스스로 비슷한 행위를 일삼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비단 맘카페 회원이 아니더라도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사안을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비난하고, 신상을 유포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스러운지 다시 한 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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