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배우 김희선이 아름다운 건 외모 때문이 아니다

새 날 2018. 10. 15. 21:21
반응형

배우 김희선은 아름답다. 비단 외모가 출중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의 배우자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대한민국의 직업인으로서, 아울러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그 자체만으로 그녀는 충분히 아름답다. 그런데 언론 매체의 시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그녀가 마치 '안티 에이징'의 대명사 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눈치이니 말이다.

 

"김희선 ‘나인룸’ 촬영중 섹시美 폭발, 43세에도 리즈미모 경신"

 

한 매체가 뽑아낸 오늘자 기사 제목이다. 젊음을 추구하고 아름답고자 하는 욕구는 죄가 될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시선이 따라가는 건 본능에 가까운 일이며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노릇이니, 누구에게나 젊음을 예찬하는 행위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듯 누구든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처럼 노화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늙어가는 과정을 꽤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앞서 언급한 김희선 관련 기사만 해도 그렇다. 그러니까 43세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에 걸맞지 않은 동안 미모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비단 이번 사례뿐이겠는가.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은연중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곤 한다.

 

"아무개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여"

"그 나이에 너무 예쁜 거 아니니?"

 


그냥 젊어 보인다거나 예쁘다고 말하면 될 일을 굳이 나이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왜일까? 우리는 왜 이토록 나이, 그리고 그와 관련한 외모에 유독 집착하며 관심을 갖는 걸까? 우리의 머릿속에는 노화 하면 밝고 좋은 이미지보다 왠지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가 더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음과 늙음은 서로 대립되거나 상반되는 가치의 개념이 전혀 아닌 데도 말이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안티 에이징'이라는 표현이다. 하도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용어인 터라 평소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않았겠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여볼 경우 조금은 어이가 없다. '안티'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비방한다는 뜻이다. 결국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내포돼 있는 셈이다. 이 표현은 미용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쩍 큰 여성들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아주 폭넓게 사용돼 오고 있다.

 


그렇다면 제 나이로 보이거나 심지어 그보다 늙어 보인다면 이는 부끄러운 일일까?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기 마련일 테고 노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왜 이러한 현상이 안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걸까? 언론 등 미디어 매체들은 이에 따르는 책임이 없는 걸까? 사회 전반을 휩쓸면서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얼짱' '몸짱' '동안' 신드롬은 과연 이와 무관치 않은 걸까?  

 

온갖 종류의 성형 시술이 만연하고 있고, 다이어트 및 몸짱 열풍이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모르며, 각종 건강식품이 대세로 떠오름과 동시에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와 관련한 시장은 갈수록 확산일로에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내고 언론 등 각종 미디어 매체들이 이를 부풀려 온 가운데 이미 거대 시장으로 성장해온 이른바 미용 관련 산업은 외모지상주의라는 대중적인 사조와 맞물리면서 강력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모양새다.

 

"고현정, 리즈 시절로 되돌린 미모" 

"홍수아, 다 홀릴듯한 마성의 미모…인형美 넘치네"

"김소연, 이 미모 실화냐…세젤예 얼굴+완벽 몸매"

"한예슬, 밀라노도 사로잡은 미모 '바비인형인줄'"

"설현, 어떤 표정이든 빛나는 여신미모 '역시 갓설현'"

"손담비 '청순美 톡톡 터지는 아름다움'"

 


오늘 하룻동안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쏟아낸 기사 제목이다. 짐작컨대 다음 날에도 비슷한 류의 기사들은 계속해서 쏟아질 것이다. 해외에서는 안티 에이징이라는 표현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지나치게 마른 몸매의 모델을 향해 자격을 박탈시키는 등 노화가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 탈출과 외모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들이 비록 느리지만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반면, 올바른 여론 형성과 공익 추구라는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미디어들이 앞서 예로 제시한 류의 자극적인 기사를 계속해서 뽑아내는 한, 아울러 대중들이 이런 류의 기사를 접하면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이상, 우리 사회는 나이에 따라 아름다움의 수준을 결정하는 무모함과 외모가 일개인이 지닌 최고의 스펙이 되어야 하는 불합리함으로부터 탈출하는 일은 요원힐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