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오롯이 희생해야 할까요?

새 날 2018. 9. 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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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를 쓴 저자 사이먼 가필드는 어느 날 휴가차 이집트를 방문, 해변에서 한 어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부는 고기를 잡는 일에 하루를 오롯이 투자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정확히 자신에게 필요한 양만큼만 잡고 있었다. 스스로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던 저자는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부에게 다가가 고기를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잡으면 돈을 빨리 모을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큰 배로 바꿔 한꺼번에 대량의 고기를 잡게 될 테며, 조금 더 바삐 움직이다 보면 아예 선단을 꾸려 기업형으로 운영하면서 큰 돈을 벌어 여생을 편히 즐길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냐며 넌지시 물었다.


저자의 물음에 대한 어부의 답변은 이랬다.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노라고... 그러니까 어부는 적당히 벌고 나머지 남는 시간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면서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삶 그리고 시간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의 태도를 엿보게 된다. 첫번째는 어부처럼 적당히 일하고 벌어 현재를 행복하게 보내자는 주의이고, 두번째는 저자가 어부에게 말한 것처럼 기회가 닿을 때 최대한 시간을 쏟아부어 돈을 모으고 가까운 훗날, 즉 노년에 그 돈으로 여생을 즐기자는 주의이다. 물론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이렇듯 다양한 삶의 태도를 접하면서 우리 역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한결 같다. 돈이 많다고 하여, 일을 잘한다고 하여, 혹은 인물이 뛰어나다고 하여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건 절대로 아니다. 정확히 24시간이다. 물론 영국 영화 '내가 잠들기 전에'에서의 크리스틴(니콜 키드먼)처럼 사고로 뇌의 일부가 손상되는 바람에 최근의 기억을 저장할 수 없게 되어 매일 아침마다 20년 전의 기억 상태로 되돌아가야 하는 극단적인 삶은 예외로 하자.


그녀의 아침은 눈을 뜨자마자 곁에서 자고 있던 남자가 누구인지 헤아리면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곁에 누운 남자는 남편 벤(콜린 퍼스)이다. 그 역시 현재의 상황을 크리스틴에게 매일 아침마다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렇듯 최근의 기억을 저장할 수 없어 매일 리셋되는 그녀의 삶은 24시간을 온전히 활용하기 어렵게 한다.


영화 '내가 잠들기 전에'


어쨌거나 이처럼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이 한정된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개인이 누려온 삶의 양태가 크게 바뀌곤 한다. 기회비용도 결국 이 한정된 시간 덕분에 생겨난 개념이며, 서두에서 저자가 어부에게 제안한 것도 다름 아닌 이 기회비용을 고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에 물고기를 더 많이 잡으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테고, 더 나아가 기업을 꾸려 풍족한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을 텐데 이를 시도하지 않는 어부가 그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기회비용 또한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 그에 따르는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저자는 당연히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부는 돈보다는 개인의 여가 생활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던 참이다. 이때 돈의 가치와 등가로 교환되는 건 오롯이 시간이다. 손에 쥐어지는 액수만큼 둘도 없는 이 귀중한 시간을 자꾸만 저만치 뒤로 흘려보내게 된다.



하지만 손 안에 아무리 많은 돈이 쥐어진다 한들 시간을 돈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로장생을 꿈꿔온 천하의 진시황제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게 바로 시간 아니던가. 손 안에 쥘 수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움켜쥔 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을 법한데, 안타깝게도 시간은 철저하게 관념적인 존재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고스란히 저당 잡히는 삶이 나은 것인지 아니면 현재를 충분히 누리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올바른 삶인지는 결국 각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다.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는 경쟁에 치여 그동안 사실 저자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의 삶을 살아온 경향이 크다.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느끼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즉, 미래를 위해 기꺼이 현재를 희생시켜온 삶이다. 근래 이러한 가치관에 일부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삶의 태도인 욜로, 삶과 생활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워라밸, 그리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소확행 따위의 새로운 삶의 양태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정된 자원이 경제 관념을 낳았듯이 한정된 시간은 가치 중심적인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의 대부분은 이집트 어부의 여유 그리고 저자의 악착 사이 어디쯤인가에 놓여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시간과 관련하여 현대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여유롭게 살면서 조금 더 바쁘게 살고 싶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여전히 허우적 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여러분은 어부가 지향하는 삶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저자가 바라는 삶을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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