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리우 모로다프로비덴자 케이블카, 서울 삼양동 모노레일

새 날 2018. 8. 19. 21:55
반응형

브라질의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의 가장 오래된 빈민가 모로다프로비덴자, 이곳은 일종의 외딴섬에 가깝다. 여기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무려 365개나 되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이렇듯 입지적으로 접근이 어려워 도시로부터 고립된 덕분에 이곳엔 빈곤과 범죄가 늘 기승을 부린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된 이곳은 치안이 취약한 탓에 마약을 기반으로 한 갱단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특수부대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나 갱단과 이미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등 전형적인 부패 군인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의 치안 담당 군인들이 10대와 20대 청년 수 명을 자신들의 권위에 불복종한다며 끌고 갔다가 갱단에 팔아넘긴 뒤 시신으로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빈민가 주민들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세상의 관심을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들에게 털끝만큼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이 소식을 접한 프랑스 빈민가 출신 설치 예술가 JR은 예외였지만 말이다. 



도움을 주고 싶었던 그는 한달음에 브라질로 날아와 모로다프로비덴자 언덕에 위치한 낡은 집들 위에 사람의 눈을 클로즈업한 거대한 형태의 사진으로 도배, 관심을 촉구하기 시작한다. 이 단순한 예술 행위가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 짐작했던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JR의 예술 행위는 브라질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세상과 단절됐던 모로다프로비덴자 빈민 지역에 드디어 관심의 눈길이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2010년, 리우데자네이루는 모로다프로비덴자에 사회복지사업을 단행, 무장 갱단을 모두 몰아내고 치안을 바로잡은 뒤 평화를 되찾는다. 뿐만 아니다. 2014년에는 이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단절됐던 도시와 연결시켰다. 케이블카의 요금은 무료이며 한 시간에 1000명가량의 시민을 싣고 오르내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65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할 만큼 고지대였던 이곳은 이제 케이블카 내부에서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 덕분에 관광객이 대거 몰려들 정도로 유명관광지로 등극했다.


ⓒ서울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한 달동안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살이를 자처했다. 일각에서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등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초열대야 현상까지 덥친 사상 초유의 찜통더위 속에서도 에어컨 없이 옥탑방 한 달살이에 도전한 그의 시도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보내줄 만한 일이었다.


한 달간의 옥탑방살이를 마친 박 시장은 19일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강남북 균형발전 정책발표회'를 통해 서울시의 지역균형발전 정책 구상을 밝혔다. 중단됐던 경전철 4개 노선도를 신설하는 등의 계획을 밝힌 것인데, 그 가운데서도 어르신 등 보행약자가 오르막이나 구릉지대를 쉽게 다닐 수 있도록 경사형 모노레일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을 검토한다는 방안이 가장 눈에 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는 세계 최장 옥외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는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로부터 착안했다고 한다. 1993년에 개통된 이 에스컬레이터는 홍콩 센트럴과 미드레벨 지역을 잇는 20개의 에스컬레이터와 3개의 무빙워크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구간의 길이는 800m에 이르고 높이는 해발 135m에 달한다고 한다. 서울시는 신 유형의 교통수단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을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구체적으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의 빈민가 모로다프로비덴자를 소외로부터 구하고자 행동에 나선 설치 예술가 JR, 그리고 행정가 박원순 시장 사이에는 공통점이라곤 딱히 없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강남북 균형발전계획 소식을 접한 뒤 JR이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발로부터 소외된 달동네를 찾아 한 달동안 옥탑방살이를 자청, 현장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기존 개발 지역과 이들과의 균형발전을 꿈꾸는 박 시장의 모습 속에서 문득 JR의 그것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365개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할 만큼 고지대, 덕분에 세상과 단절되어 가난과 범죄로부터 영원히 고통 받던 모로다프로비덴자, 이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빈민지역을 도시 안으로 편입시키고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게 한 장본인 JR, 달동네 체험살이 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에 거주하는 교통약자들을 위해 모노레일 등을 설치, 기존 지역과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는 박원순 시장, 이들이 공통으로 불러일으키는 영감은 우리에게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선사해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