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젊은이는 행복하면 안 되나요?

새 날 2018. 9.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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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힐은 신지 않는다'의 저자 사쿠마 유미코는 미국 어학연수 중 한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자유로운 나라 미국, 그것도 뉴욕에 눌러 앉아 살기로 작정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더구나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한 괴짜나 아웃사이더마저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그녀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온 까닭이다. 덕분에 벌써 20년째 뉴욕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 등을 두루 경험한 뒤 결국 혼자 사는 방식이 가장 자기다운 삶이라 결론 짓고 싱글 라이프를 택한다.


물론 이러한 성향의 그녀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남편과 처음으로 일본에 돌아온 날 동창 가운데 한 사람이 저자에게 이렇게 물었단다.


"유미코는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상상도 못하겠지?"


질문이 왠지 삐딱하다. 그러니까 굳이 이를 해석해보면, 저자는 본인의 행복만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의미 아닌가. 친구의 질문 속에 문득 악의가 가득 담겨 있음을 간파한 저자는 당혹감을 느껴야 했으나 사람은 저마다 각기 행복을 추구하고 있고 그 방식이 사뭇 다른 데다 저자 역시 자신만의 색깔을 따랐을 뿐이기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으로 당시 상황을 마무리짓는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결혼한다 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는다 갖지 않는다', '일을 한다 하지 않는다' 따위의 숱한 갈림길에서 저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저자 또한 그랬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믿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질문에는 왠지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삶의 방식만 옳고 저자의 그것은 틀렸다는 듯이 말이다. 어쩌면 보편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시선 대부분이 이러한 류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각자의 방식에 따라 일을 하고 놀며 바쁘게 생활한다. 아울러 우리 인생이 객관식 문제가 아닌 이상 단 하나의 답으로 정해질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자꾸만 모범 답안만을 요구하는 듯하다. 저자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킬힐을 신지 않는다. 가벼운 스니커즈를 신고 뉴욕 거리를 뚜벅뚜벅 활보하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그런 그녀가 나는 믿음직스럽다.


ⓒ연합뉴스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잘사는 것이 중요해서 애를 낳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지난 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주최한 ‘중소기업 일 생활 균형 활성화 방안’ 포럼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한 발언이다. 앞서 소개한 책 '킬힐은 신지 않는다'의 저자 친구가 던졌던 질문과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이렇듯 구시대적 발상에 매몰돼 있는 정치인이 있다는 건 재앙에 가깝다. 두 문장이 비단 비슷한 속내의 발언일지라도 그의 무게감은 사뭇 달리 다가온다. 유미코 친구의 발언은 오로지 저자 한 사람만을 표적 삼아 비아냥거린 것이고,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의 발언은 우리 사회의 젊은이 전체를 표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다를 수 있어도 행복을 누리기 위해 살아가는 건 모두가 한결 같을 테다. 우리가 삶을 계속해서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건 강한 소나기 뒤 불쑥 얼굴을 내미는 태양처럼 수많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찰나의 행복을 느끼며 이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행복의 기준이나 잣대는 사람들 저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말이다. 과거 고도성장기 시절 기성세대가 애를 낳아 키우고 성장시키는 일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저성장시대를 관통해 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애를 낳지 않는 삶이 도리어 행복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구조적 모순을 청년세대에게 물려준 기성세대가 행복의 기준이 자신들과 다르며 틀렸다고 윽박지르는 건 전형적인 꼰대 행위에 다름 아니다. 취업과 인간관계, 결혼, 출산 등 웬만한 것들을 모두 뒤로 미루거나 아예 포기해야 할 정도로 녹록지 않은 토대 위에서 어렵사리 삶을 지속해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감히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단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다. 더구나 지난 10년 동안 권력을 움켜쥔 채 오늘날 청년들의 삶을 지금과 같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린 세력 내지 개인이라면 더더욱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어느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 자신만의 삶 앞에 위태롭게 선 청년들, 오늘도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따위의 무수히 놓인 선택지 앞에서 과연 어떤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인지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기성세대의 일정한 시각과 틀로 행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도 행복을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다. 저출산 현상을 이들 탓으로 돌리지도 말라. 당신들이 과거 그랬던 것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어느 무엇보다 진정한 기쁨이자 행복으로 다가오게 될 때 자연스레 해소될 사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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