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도대체 몇 번의 탈락 문자일까?"

새 날 2016. 9. 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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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몇 번의 탈락 문자일까?"


취업준비생인 한 여성은 수십차례에 걸쳐 취업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그때마다 퇴짜를 맞는다. 이유도 다양하다. 학생 시절에는 무얼 했느냐, 사회는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당신은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크게 낙심하여 거리에 앉은 그녀, 친구로부터 취업에 성공했다는 문자 한 통이 날아오고, 축하한다는 답글을 보내긴 했으나 왠지 뒷맛은 개운치가 못 하다.


다시 기운을 내어 또 다시 이력서를 쓰고 면접에 도전해 보는데, 이번에는 무언가 예감이 좋다. 그 누구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실 것 같다. 저녁 준비를 하고 계실 엄마를 떠올리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그녀가 빵가게에 들러 치즈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들어서려는 찰나, 때마침 날아드는 문자 한 통.. 합격 통보를 고대했건만... 또 다시 탈락... 그녀는 좌절하며 집 부근 공원의 그네에 주저앉고 만다. 그때다. 어느새 엄마가 찾아와 "여기 있었구나" 하며 딸의 그네를 슬며시 밀어준다. 놀란 그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데...



청년실업자 44만 명의 시대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대 청년 실업자 수는 44만8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9년 이래 최고치다. 이는 박근혜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해 연평균 9.2%였던 청년 실업률은 7월 말 현재 평균 10%대까지 치솟아, 이 추세라면 연간 기준으로 두 자릿수를 찍을 것으로 예측된다. 두 자릿수 청년 실업률은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초의 기록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실제 체감 실업률이 아닐까 싶다. 실업률 통계에는 드러나고 있지 않으나, 사실상 실업 상태인 청년들의 숫자가 이미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실제 실업률은 20%대 중반이 된다. 


무려 2년 전, 그러니까 2014년 일본에서 제작, 방영되었다가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방영이 중단된 가스회사 광고 하나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해당 광고는 비록 우리가 아닌 일본 사회의 현실을 담고 있지만, 광고속 이야기는 필시 우리 주변의 흔하디 흔한 청년들의 자화상을 그려놓은 듯 상당히 리얼하면서도 공감을 불러온다. 누구를 이야기하느냐며 굳이 따져 물을 필요조차 없이 바로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그것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재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고통은 일종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이는 다양한 양태로 발현되고 있다. 현실의 높은 벽으로부터 느껴졌을 법한 좌절감은 금수저 흙수저의 수저 계급론 내지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생활고 탈출을 위한 각종 극복기와 생존 시리즈 따위가 유행을 타고 있기도 하다. 'N포세대' '취업절벽' 등 신조어가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정규직이 되고자 씨름하는 젊은 인턴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거나, 취업준비생의 고충과 젊은 직장인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담은 모바일 게임 ‘내 꿈은 정규직’이 100만 다운로드를 넘어 한때 무료게임부문 다운로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지고 있고, 한국을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가 확산되고 있다. 모두가 남 탓을 하며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가 공멸의 나락으로 함께 떨어질 수도 있다. 포기와 좌절을 몰랐던 불굴의 정신을 다시 일으켜서 다시한번 대한민국의 성공신화를 이뤄내자.”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 중 일부인데 지나치게 현실감이 떨어진다. 당시 청년들의 비난이 쇄도했던 것도 현실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이유 때문일 테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일정 수준의 스펙을 갖추고 수십차례에 걸쳐 취업문을 두드렸으나 앞서 사례로 든 광고속 여성처럼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시는 일이 어쩌면 우리의 극명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마치 청년들이 '노오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불만 불평만 늘어놓는 한심한 사람들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사실상 청년들은 갖춰야 할 자격증, 외국어 능력, 그리고 필요한 점수와 요건 등을 모두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데다, 남 탓할 겨를조차 없이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반복되는 좌절로부터 비롯된 고통을 겪고 있을 청년들을 위로하기보다 남 탓을 한다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는 표현으로 청년세대를 질책하는 건 다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와 진배없다. 이러한 영혼 없는 발언보다는 차라리 비록 우리가 만든 광고는 아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일본 내에서조차 방영이 금지되었다고 하는 광고 한편을 보며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는 편이 적어도 백번은 바람직할 것 같다. (이 포스팅 맨 아래쪽에 해당 광고를 링크해 두었다)



청년들에게 그나마 위안으로 다가오는 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 결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올해 전세계 청년 실업률이 사상최고치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가 공개한 연례 '세계 청년 고용과 사회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청년 고용의 현주소는 사상최악에 가깝다. 지난해의 실업률은 12.9%였으나 올해는 13.1%로 올라 사상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최근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미증유의 산업재편과 펀더멘탈의 대대적인 변화는 세계적인 조류의 여파로 받아들여진다. 


단언컨대 청년들의 노력은 현재 쏟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작 더욱 노력해야 하는 건 우리 청년들이 아니다. '노오력' 해야 한다며 다그치는 정부가 바로 '노오력'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어야 한다. 청년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이는 필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의미한다. 이를 해결해야 하는 건 결국 국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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