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돌잔치 돌잡이의 화려한 변신, 씁쓸한 이유

새 날 2016. 8. 3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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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기술이 미흡하고 위생 관념마저 희박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비록 아기가 출생하더라도 백일을 넘기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그나마 백일을 넘기더라도 또 다시 1년이란, 보다 긴 시간이 고비로 다가오며 이를 관통하는 일은 더더욱 만만치 않은 험난한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생장의 어려움이 보통 백일 혹은 1년을 단위로 하는 덕분에 태어난 아기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던 풍습 역시 자연스레 그에 맞춰져 왔으며, 이는 다름아닌 오늘날의 백일잔치와 돌잔치의 형상으로 남아있다. 근자에는 돌잔치의 수준이 한층 발전, 일가 친척의 범주에서 벗어나 어느덧 주변의 지인들을 모두 초대하여 자축하는, 살아가면서 치르는 몇 안 되는 성대한 행사 수준으로까지 승격한 느낌이다. 


아울러 생활 환경이 예전과 비교하여 몰라보게 달라진 오늘날의 돌잔치는 원래의 취지였던 아기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던 형태로부터 급격하게 퇴조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종의 신고식과 같은 통과의례로 변모한 감마저 엿보인다. 더구나 핵가족화로 인해 아기가 귀해지자 어느덧 돌잔치는 과시를 위한 경쟁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온통 금으로 도배된 백일잔치 내지 돌잔치가 유행한다고 하여 얼마 전 여론의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물론 남이야 얼마를 쓰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행사를 치르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SNS가 발달하면서 소비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과시적인 소비를 경쟁적으로 벌이다 보니 이러한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점에 있다. 몇 사람의 일탈이야 사람 사는 세상이니 얼마든 있을 수 있는 사안이나, 이것이 경쟁적으로 벌어진다고 한다면 차원은 전혀 달라진다.


ⓒ한국일보


돌잡이에 사용되는 물건들 역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돌잡이는 첫돌에 연필이나 책, 돈, 떡, 실, 붓, 밥, 공책 등의 물건으로 돌상을 차리고 아기에게 상 위에 놓인 물건을 마음대로 골라잡게 하여 어느 것을 고르느냐에 따라 그 아기의 장래와 관련하여 미래를 점쳐보는, 일종의 재미로 알아보는 의식이다. 실제로 아기가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 돌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환호 내지 장탄식이 쏟아지곤 한다. 하지만 각기 물건마다에는 아주 좋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테면, 실은 장수를 의미하고, 연필을 쥘 경우 공부를 잘한다거나 떡의 경우 튼튼하고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니 돌잡이에 사용되던 물건 역시 손바뀜이 있는 듯싶다. 물론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돌잡이 상이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각광을 받는 직업이라든가, 성공한 사람을 좇는 부모의 희망사항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하니 조금은 염려스러울 뿐이다. 돌잡이 의식을 통해 아기가 특정 물건을 잡는다고 하여 실제로 아기의 미래가 그대로 이뤄지리라 믿는 사람은 물론 없다. 돌잡이 의식은 돌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일종의 눈요기거리이자 기껏해야 아기에게 희망사항을 불어넣는 역할 정도가 전부일 테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조인이 되길 바란다며 올려놓는 의사봉이나 의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상 위에 놓는 청진기는 아무런 흠이 되질 않는다. 심지어 보다 더 크고 야무진 희망을 바라는 부모도 있을 수 있다. 자녀가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며 봉황문장을 올려놓거나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금배지 그리고 CEO의 명패까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심지어 특정 브랜드의 외제승용차 모형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니 말이다. 여아의 경우 신랑잡이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연예인이나 유명인 등의 인형을 놓고 미래의 신랑감을 고르는 방식이라고 한다. 물론 재미로 하는 의식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한국일보


아기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랄 것도 없이 한결 같을 테다. 이러한 바람은 결코 흠이 될 리 만무하다. 과거에는 아기의 안녕과 무탈한 성장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면, 근래에는 적어도 그보다는 조금 더 차원이 높은 바람을 고대할 법하다. 아마도 그러한 변화의 흐름이 돌잡이 상에도 반영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으며, 근래 장기 경기 침체로 인해 우리의 삶이 워낙 팍팍해지다 보니 자신의 2세만큼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울러 보편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에 올라 여유있게 살았으면 하는 부모의 애틋한 심정이 담긴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그러나 이러한 최근의 돌잔치로부터는 왠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든다. 돌잔치는 엄연히 아기를 위한 행사이고, 진정으로 아기의 행복을 바란다면 부모가 끝내 이루지 못하거나 2세를 통해 여전히 꿈꾸고 있는 소원풀이의 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될 노릇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아이들을 자신의 아바타로 여기며 부모가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아이들을 통해 발현시키고자 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세상이거늘, 돌잔치마저도 부모들의 욕구 해소의 도구로 전락시켜서야 되겠는가 싶다. 돌잔치를 원래의 주인인 우리 아기들에게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 아기에게 바라야 하는 건 돈 많이 벌고 훌륭한(?) 직업인이 되거나 좋은 자동차 그리고 멋진 남편이 아니지 않는가. 이는 한낱 부모의 욕심에 불과할 뿐이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던 실이나 쌀, 연필 같은 소박한 형태의 전통적인 돌잡이 대신 최근 올라오는 화려함 일색의 돌잡이 물건들로부터는 무언가 이물감이 느껴진다. 아니 왠지 우리 사회에 가득 들어찬, 여과되지 않은 꿈틀거리는 온갖 욕망들의 종합 발현체처럼 와닿는 터라 무척 씁쓸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진정 아기에게 바라야 하는 건 무얼까? 어떠한 훌륭한 직업을 갖고 무엇을 소유한다기보다 이 사회에 진정 쓸모 있는 인격체로 올곧게 성장하기를 바라야 하는 게 아닐까? 아기가 건강한 심신과 더불어 건전한 상식을 갖춰나갈 수 있도록 기원해야 하지 않을까? 제발이지 아기의 행복과 부모의 욕심을 동일선상에 놓는 우를 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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