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디올 전시회 논란, 한국여성 비하인가 예술인가

새 날 2016. 4. 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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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 플래그십 매장 '하우스 오브 디올'에서는 지난 2월22일부터 프랑스의 유명 명품 브랜드인 '디올'의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 - 서울'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19일부터 이곳에서 전시되어오던 한 작품이 한국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시된 여러 작품들 중 한국인 사진가 및 미술가 등 예술가의 것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 이 가운데 사진작가 이완 씨의 '한국여자'라는 작품이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논란이 된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빨간색 가방을 들고 검정색 원피스를 입은 한 젊은 여성이 상점들이 밀집한 골목 앞에 서 있다. 그런데 대체로 허름한 상가들 틈 사이로 유독 몇몇 상점 간판과 광고물들만 눈에 띄는 형국이다. 이미지 전문가가 아닌 내가 봐도 합성임이 뚜렷할 만큼 여성의 주변은 조악한 형태의 글자가 박힌 사물들 일색이다. 물론 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여러 장치 중 하나로 읽힌다. 간판에는 '룸 소주방'이니 'xx타운' 따위의 글귀가 도드라지게 묘사되어 있다. 굳이 티가 나는 촌스런(?) 합성을 통해 여성이 현재 서 있는 곳이 유흥가임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이다. 

 

예상대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온통 난리가 났다. 물론 언론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띄우느라 너나 할 것 없이 바쁘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작품이 성을 팔아 명품 핸드백을 구입하는 일부 한국여성을 빗대어 표현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양상이다. 작가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고, 이러한 문제적 작품을 전시한 디올의 결정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명품백이나 값비싼 옷 등을 구입하기 위해 유흥가에서 성을 팔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러한 방식을 이용해 쉽게 번 돈으로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일부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동안 인구에 흔히 회자되어오곤 했는데, 그렇다면 해당 작품이 그러한 영감을 불러오기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예술작품이란, 이를 통해 감흥을 얻는 사람들이 지닌 감정이나 경험, 그리고 가치관 등에 따라 얼마든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그러한 성향의 것임이 분명하다. 물론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그냥 보이는 그대로, 그리고 느낌 와닿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다반사이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비난에 앞서 작가의 의도도 한 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해당 작품을 완성한 이완 작가는 디올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합성 기법을 사용했다. 크리스찬 디올의 제품은 효율성 위주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는 다른데 이런 것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일부 네티즌들이나 언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여성을 비하하려는 목적보다 우리의 가벼운 소비 문화 내지 갈수록 물질만능에 천착해가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예술가라면 작금의 현실이 담긴 고뇌에 대해 작품으로 얼마든 자유롭게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할 테고, 이러한 작품을 마주하게 된 우리 역시 왜곡된 소비 실태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해당 전시회를 개최한 디올 측도 이러한 논란과 마주하는 입장이라면 예상을 빗나간 결과 덕분에 무척 당혹스러울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디올은 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해도 어쨌거나 예술 전시회라는 명분을 내걸었으니, 국내외 여러 작가들이 그들과 함께했음직하다. 만약 이완 작가의 '한국여자'라는 작품이 지금 한국에서의 논란처럼 이들에게도 똑같은 느낌과 분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제품을 디스하는 꼴인데 굳이 그럴 의도가 있었을까 싶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혹시 예술작품을 예술이라는 이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옹졸함 내지 도둑이 제발 저린 결과물은 아닐까? 해당 작품을 바라보면서 충분히 달리 해석이 가능함에도, 굳이 한국여성을 마치 유흥가에서 성을 파는 종업원으로 비하했다며 혐오감을 느낀다는 자체가 이미 우리의 소비가 심각하게 왜곡돼 있음을 자인하는 꼴은 아닐는지.. 작가가 유흥가와 여성 그리고 명품백을 전면에 내걸고 있기는 하나, 그의 언급처럼 이는 지극히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할 테고, 이러한 결과의 이면에는 엄연히 남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노릇이다.

 

물질만능으로 치닫고 있는 비이성적이며 비틀어진 소비가 비단 여성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 표면적인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호소하기보다 오히려 무언가 비현실적이지만,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현실적일 것 같은, 기괴하면서도 굉장히 언발란스한 장면을 통해 그로데스크한 느낌을 얻으며 되레 우리의 내면과 현실이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 역시 인터뷰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리고 한국적 소비를 언급하고 있다. 외양은 비싼 옷과 명품백 등으로 치장되어 있으나 우리의 본질은 어쩌면 저 사진속 허름한 상점들 사이로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유흥가 광고물과 명품백이라는 겉치레처럼, 부실한 자아와 자존감을 커버하기 위해 비이성적인 소비 행위에 빠져들고 있는 현대인들의 허약하기 짝이 없는 내면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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