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반칙이 일상인 사회를 만드는 건 무엇인가

새 날 2016. 4. 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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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불법 행위인데도 불법 주정차나 무단횡단은 누구나 하는 일상의 반칙이 됐으며,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반칙이 우리의 국격까지 흔들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기초적인 법질서를 지키지 않는 풍조가 일반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들조차 만연돼 있다는 일종의 하소연이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법질서 지수 부문에서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하위권인 25위에 랭크돼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있다.

 

물론 틀린 말 하나 없다. 주변을 살펴보면 무단횡단을 일삼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흡연자들의 대부분은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그냥 길거리에 버린다. 여기에 가래침은 덤이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차도며 인도 가리지 않고 무법질주하기 일쑤이고, 자동차는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기 바쁘다. 무단주차는 그야말로 일상이다. 심지어 인도 위에 떡하니 차를 올려놓은 채 보행자의 통행로마저 막는 일도 심심치 않게 겪는다. 산책로엔 목줄 없는 애완견을 끌고 나와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불편하게 하고, 배변 뒤 뒷처리를 하지 않아 곳곳엔 그로 인한 흔적이 널려있다.

 

지하철을 타려고 줄을 서면 어느새 얌체족들이 나타나 문이 열리자마자 낼름 타버리곤 한다. 긴 줄을 선 채 기다리던 사람들은 일순간 허탈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차하는 사람이 모두 내린 뒤 타야 함에도 잘 지켜지지 않다보니 문 입구는 내리는 사람과 타려는 사람이 한데 엉켜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다. 특히 출근길이나 퇴근길 무렵에는 일대가 온통 혼돈의 도가니로 변모하곤 한다. 노약자석과 임신부석은 배려를 위한 좌석이지만, 별도로 표시된 분홍색 좌석에는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멀쩡한 젊은 남성이 앉아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수막은 지정된 장소에, 그리고 사전 신고가 이뤄져야 부착 가능하나 이를 지키는 사람 하나 없다. 오죽하면 혈세를 부어가며 현수막 수거 인력을 따로 고용해야 할 정도일까 싶다. 더 웃픈 건 이러한 불법 행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이 다름아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소속된 각 정당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해당하지만,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이렇듯 시민의식이 너무 낮아 기초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꼽곤 한다. 혹자는 처벌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이처럼 반칙이 일상화되어간다고 말을 한다. 물론 결코 틀린 표현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처벌 등 규제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게 가장 바람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해야 한다면 최소화하는 게 옳다. 결국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들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야 하는데, 실은 그와 정반대의 인식이 더욱 강한 느낌이라 씁쓸하게 와닿는다. 왠지 지키면 자신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물은 우연인 걸까? 아니면 우리 국민성 탓? 모든 현상에는 그를 뒷받침할 만한 배경과 원인이 존재하는 법이다.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근래 '테슬라' 덕분에 전기 자동차 등 환경 친화적인 탈 것에 대한 이슈가 부쩍 관심사로 떠오른다. 테슬라가 치고 올라오는 사이 우리의 친환경 자동차 기술은 과연 어느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와 관련한 이슈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등이 한창 갑론을박 중이다. 그런데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대목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환경 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환경부 장관이 타고 다니는 관용차는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다. 2015년식 에쿠스인데, 이 차량의 배기량은 무려 3800CC나 된다.

 

환경을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장관의 차량 치고는 지나치게 에너지가 비효율적인 데다 공해마저 유발하고 있기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요소다. 개인 소유의 차량이라면 그나마 개인의 자질 탓으로 돌릴 수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해당 차량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관용차에 해당한다. 물론 이는 앞서 언급한 일상의 반칙 사례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만, 권한을 누리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가 자신의 직책과 엇박자를 보이는 행태 역시 국민들에게 가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앞서의 사례들과 닮은 꼴이다.

 

얼마전 황교안 총리가 서울역 플랫폼 안으로까지 관용차를 끌고 와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 역시 특권으로부터 비롯된 반칙 행위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장관부터 총리까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 인사들이 외려 좋지 않은 행태를 일삼거나 반칙 행위를 보이는 게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보편화됐다.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정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은 더욱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불과 5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총선에 대해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는 자평을 내놓았다. 진박 및 옥새 파동 탓에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져 과반인 150석이 어려울 것 같다며 대놓고 새누리당 편을 거들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전부터 국회를 압박하고 진박 후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달라며, 선거 중립 의무를 벗어나거나 3권분립을 해치는 발언 및 행동을 일삼아 왔으나 어느덧 그나마 다소 조심스럽던 태도마저 벗어던진 채 아예 공개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나선 게 아닌가.

 

헌법에도 명시된 3권분립이며, 공직선거법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이대며 탄핵으로까지 몰고 갔던 잣대를 굳이 비교하여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정치적 지형과 지금의 그것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법이라는 게 이렇듯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세상일진대, 이를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이라고 한들 달리 느끼며 받아들이게 될까 싶다.

 

반칙이 일상화되어가는 사회의 근원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절대 권력을 누리며 이를 행사하고 있는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그리고 고위 공무원들까지, 이들이 헌법 등을 무시하고 불법 행위를 태연하게 저지르고 있는 마당에, 국민들이라고 하여 바보가 아닌 이상 법을 지키고 이를 그대로 따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조차 지키지 않는 법과 질서이거늘, 왠지 자신만 손해보는 느낌이 드는 상황에서 누군들 법질서를 지키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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