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람의 감정마저 사고 파는 씁쓸한 세상

새 날 2016. 4. 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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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온갖 부류의 기상천외한 도우미들이 존재한다.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서거나 하객 역할을 대행하는 도우미는 이미 흔하디 흔한 모습이고, 심지어 예식을 주관하며 예비부부의 앞길에 덕담과 함께 축복을 전하는 주례마저도 돈을 주고 빌리는 세상이 돼버렸다. 애인이나 부부 등의 역할 도우미는 엄연히 불법임에도 여전히 세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한다. 근래 중국에서는 장례식장에서 곡을 해주고 돈을 받는 곡 도우미가 성업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빈소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유족이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돕는 게 그들의 주된 역할이다. 

 

결혼식과 장례식,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직접 감내해야 할 특별한 의식이라고 한다면, 기왕지사 완벽한 모양새와 형식을 갖춘 채 치르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형식 때문에 도우미까지 동원해야 하는 건 어쩌면 자본주의의 본질인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씁쓸한 광경이자 주변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발현된 일종의 과시적 욕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가벼운 생각이 진정 중요한 가치를 잃게 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서울에도 어느덧 벚꽃이 만개했다.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기온이 부쩍 오르면서 꽃망울을 일제히 터트린 것이다. 날씨마저 좋은 데다 한껏 부푼 꽃망울을 보고 있자니, 젊은이는 젊은이 대로 늙은이는 또 늙은이 대로 나이 성별 국적을 떠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꽃놀이 시즌이 도래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짝이 없는 젊은이들이 일종의 그들의 온라인 놀이터라 할 수 있는 SNS를 통해 돈을 대가로 꽃구경을 함께할 이성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언뜻 보기엔 성(性)을 매개로 하는 조건만남이나 원조교제 따위로 비칠 공산이 크지만, 다행히 이러한 선입견은 기우에 불과한 모양이다.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한 언론에 따르면, 이들은 글자 그대로 하루 동안 같이 놀 친구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 발칙하게도 최저시급에 해당하는 일당 6,030원을 제시해 가며 하루 동안 함께 꽃놀이를 즐길 이성을 찾고 있는 것이다. SNS의 발달과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 길들여진 요즘 세대들에게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도 이처럼 쿨함 일색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어차피 사람을 만나면 돈을 써야 하는 처지에서 SNS라는 매개를 이용하게 될 경우 서로가 부담 없이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오프라인 상에서의 물리적인 소개팅 같은 경우 주선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터라 곤란할 때가 많지만, 온라인에서의 가볍고 즉흥적인 매체 특성상 좋고 싫음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장점으로 작용한단다. 한 마디로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처럼 쿨해서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쿨하게 만나니 헤어질 때도 쿨할 수 있는 법일 테다. 일견 합리적인 면모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러한 유행의 이면에는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도우미의 사례는 약간의 형식과 과시욕을 내포하긴 하나, 그나마 오랜 시간 형성돼오며 굳어진 각 사회마다의 전통적인 관례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작은 몸부림의 하나로 볼 수 있는 데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은 평생 몇 차례 치르지 않는 행사이기에 결코 바람직스럽다고는 할 수 없어도, 어쩌면 필요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정 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형의 상품을 판매하는 서비스라는 개념으로 이를 확장해 본다면, 물론 이는 억지 논리이겠으나, 일종의 상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하루 동안의 놀이를 위해 돈을 주고 사고 파는 거래를 통해 이성친구를 얻는다는 건 마치 성매매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체를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로 받아들여져야 하듯, 신체를 지나 어느덧 사람의 감정마저 사고 파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와 진배없기에 더없이 씁쓸하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인 즉흥적인 만남이 치명적이라기보다 결국 이러한 만남 뒤에는 돈이 연결고리로 얽혀 있다는 점이 본질로 다가온다. 물론 가볍고 쿨한 만큼 그에 비례해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라는 사실도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사람의 감정이란, 조직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자신의 그것과는 무관하게 발현하여, 기분, 느낌까지 조절, 다른 사람을 만족시켜야 하는 노동인 이른바 감정노동이 아닌 이상 상거래 대상이 되어선 결코 안 될 노릇이다. 감정노동자들의 감정팔이(?)만으로도 인간이 지닌 감정은 근래 충분히 상처 받고도 남을 지경이 아닌가. 인간의 감정을 재화 및 서비스와 동급으로 취급한다면, 이는 육체를 사고 파는 행위 이상으로 인간의 존재 가치를 망각하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행위를 아무런 감정 없이 할 수 있다는 건, 결국 우리 모두가 부지불식간 자본의 위력에 잠식된 채 짓눌리고 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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