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부는 왜 일본 수산물 방사능 평가 공개 거부하나

새 날 2016. 4. 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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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9에 이르는 강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지방을 덮쳤다. 일대를 아비규환으로 변모시키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재앙의 서막일 뿐.. 얼마후 동일본 일대를 최악의 시나리오속 끔찍한 공간적 배경으로 둔갑시키는 대재앙이 손 쓸 겨를도 없이 밀려든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 파손되며 방사능이 대거 유출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인류에게 원전의 위험성을 적나라하면서도 끔찍한 방식으로 알렸던 1986년의 체르노빌사고를 뛰어넘는,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된다. 동일본 대지진이 현재진행형인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의 후폭풍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우리에게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방사능 물질의 속성상 끝이 보일 리가 만무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 수가 17만 명을 헤아릴 정도란다.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짐작하던 그대로다. 방사능 물질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수십 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후쿠시마 주변 지역의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원전 사고가 터진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주변 8개 현에서 나오는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물론 이조차 정부가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기보다 식품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고, 이에 대한 여론과 원성이 비등해지자 마지못해 받아들인 조치로 읽힌다. 이후 일본 정부의 우리를 향한 압박은 거셌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정말 역대급이다. 수입금지조치를 풀지 않으면 모종의 불이익을 가할 것처럼 윽박지르더니, 급기야 해당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 제소하기에 이른다. 지난해의 일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법상 한국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계속 금지하려면 과학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 전문가 위원회'를 급히 꾸려 일본으로 파견 보낸 뒤 현지에서 조사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5일자로 이들은 활동을 접었단다. 모든 문제는 이로부터 기인한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계속 유지되려면, 이들이 활동을 중단한 이후에도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일본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 조사를 계속해야 하나, 이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 없기에 민변이 직접 확인에 나선 정황이다. 하지만 민변이 식약처를 상대로 요청한 관련 정보공개에 대해, 진행되고 있는 WTO 재판에 관한 정보인 만큼 일본에 전략을 노출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관련하여 뜨뜨미지근한 태도를 견지해온 건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애초 방사능 오염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될 때에도 괴담 운운하지 말라며 오히려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바 있으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릴 때조차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만에 하나 세계무역기구와 일본에 수산물 방사능 위험 평가 결과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이번 일본의 제소와 관련한 분쟁에서 패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듯 불안한 상황에서도 민간 위원회의 활동 중단 이후 정부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밝히고 나서지 않는 까닭에, 과연 정부가 일본의 제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사안은 그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스스로 국민의 알 권리조차 봉쇄하고 나선 셈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후쿠시마 원전사고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후쿠시마뿐 아니라 일본에서 생산된 어떤 식품이든 안전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다. 일본 현지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만 하더라도 후쿠시마 부근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을 절대로 장담할 수 없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에 따르면, 2013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된 현미를 검사한 결과, 검사 대상 90% 이상의 쌀에서 50㏃/㎏ 이상의 세슘이 검출됐으나, 원전 사고 이후 높게 설정된 방사능 기준치 미만이라는 이유로 시판이 허락된 바 있으며, 지난해 11월엔 같은 지역에서 생산된 쌀에서 2013년보다 되레 높은 65㏃/㎏과 77㏃/㎏의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단다. 이러한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수입된 수산물가공품과 양념젓갈류는 4만3548kg(65만2305달러 상당)에 달하며, 이 중 99.5%인 4만3316kg가 후쿠시마현에서 수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정부의 WTO 제소를 통한 분쟁 유발이라는 영 마뜩잖은 상황 연출은, 이렇듯 애초 우리 정부가 보다 강력하고 치밀한 대응과는 거리가 먼 미온적인 자세를 견지해오면서 빚어진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억측을 낳게 하기에 충분하다. 중국과 러시아 등 또 다른 이웃국가는 수산물뿐 아니라 수산가공품 등 모든 식품의 수입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미흡한 조치를 취한 우리나라만 유독 제소를 당했다는 건, 그만큼 일본이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우리 정부의 태도와도 관련이 깊다. 하지만 이미 WTO 제소라는 분쟁 국면으로 말려든 이상, 앞서의 태도 내지 결과와는 별개로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치밀하면서도 투명한 대응이 절실하다.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일본 식품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마땅히 지켜야 할 정부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소상히 밝혀도 시원찮을 판에 왜 꽁꽁 싸맨 채 마치 밀실에서 모종의 작업을 벌이는 양 행동하고 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일본 식품에서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는 등 국민들이 불안감을 떨쳐버리기엔 모든 여건이 미흡함 일색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가치보다 더 중요한 건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그동안의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일본의 분쟁 의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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