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인의 색상 마케팅, 의지 표명이거나 반칙이거나

새 날 2016. 4. 1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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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무슨 색상의 옷을 입건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이자 자유 의사에 속하는 사안이라 사실 내 관심 밖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도 때로는 자의에 의하든 타의에 의하든 시기와 장소에 따라 제한을 받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를테면 장례식장에 가면서 알록달록한 의상을 입을 경우 주변으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갈 수 없는 노릇일 테며, 최악의 경우 돼먹지 못한 사람이란 낙인마저 찍힐 우려가 있다. 하물며 일개인도 이러할진대, 공직에 위치한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이와 관련하여 2년 전 있었던 해프닝 하나가 새삼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가 빚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당시 그는 검정색 슈트를 점잖게 빼입고 세월호 유가족과 우리 국민 앞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으나, 정작 상주 노릇을 해야 할 우리 대통령은 화려한 하늘빛 재킷을 입고 그와 마주하여 무수한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비단 의상뿐이겠는가. 이렇듯 색상마다 각기 담고 있는 이미지와 감성은 어느덧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와중이다.

 

ⓒ뉴시스

 

해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쉴 틈도 없이 청주와 전북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뭐가 그리 급했던 걸까? 그런데 그녀가 방문한 곳은 공교롭게도 4.13 총선 과정에서 여야 후보가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게다가 입고 있던 의상의 색상 또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양상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의상의 선택이야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 법도 한데, 어째서 문제가 되는 걸까? 다름아닌 새누리당의 상징인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이래 저래 구설에 오를 만도 하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3권분립에 기반한 헌법 정신을 망각한 채 틈만 나면 국민이라는 이름을 빌려 특정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국회를 압박하거나 야당을 비난해왔으며, 심지어 이른바 '진박'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오던 찰나이기에 총선 막바지에 이른 이 시점에서 그러한 행태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쿠키뉴스

 

적어도 선거에서 만큼은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는 위치가 다름아닌 대통령이다. 허나 특정 정당을 상징하는 색상의 의상을 입고, 총선 접전지역만 콕 집어 누비며, 20대 국회의 변모를 기원한다는 류의 발언을 일삼고 있는 건 여당의 승리를 의식한, 누가 보더라도 노골적인 선거 개입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사전투표를 행사하려 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물론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이를 곧 취소하긴 했으나, 선거 당일날 투표를 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직접 사전투표를 고려한 건,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 여파로 보수층 유권자들의 표심이 대거 이탈하리라는 전망이 제기돼온 상황에서 이들의 결집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청와대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실을 발표한 것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란다. 통일부는 탈북민과 북쪽에 남은 가족 등의 신변 안전을 고려해 탈북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온 관례 등을 들어 반대 의견을 피력하였으나 청와대가 이를 묵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보수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모으기 위한 또 다른 양태의 '북풍'으로 읽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색상은 무의식 중에 우리의 심리와 감성을 교묘히 파고든다. 각 기업들이 색상을 이용한 마케팅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건 다름아닌 이러한 특성을 십분 활용,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권력 선점 내지 우위를 노리는 각 정당 역시 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노란색 하면 정의당을 연상케 하고 빨간색 하면 새누리당을 떠올리게 하듯, 각 정당의 색상에는 치밀한 내부 전략이 담겨있으며, 특히 선거전에서는 이러한 색상이 무엇보다 탁월한 선전 도구 역할을 톡톡히한다. 

 

이와 관련한 아주 좋은 사례가 있다. 서울 은평을 지역구의 이재오 후보는 새누리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음에도 이번 총선에서 여전히 빨간 색상의 의상을 입은 채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야당의 분열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이라는 어부지리에 가까운 효과로 당선이 유력해진 그는, 당선될 경우 새누리당으로의 복당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의 뜻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박 대통령이 말하는 이른바 '진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오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색상으로 고스란히 드러내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한편, 친정인 새누리당에도 복당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고 나선 셈이다. 이러한 선거운동 방식은 유권자들의 잠재 의식을 파고들며 상당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짐작된다.  

 

이재오 의원 블로그 캡쳐

 

이재오 후보가 색상 마케팅을 통해 유권자의 심리를 직접 저격하고 나선 것처럼, 박 대통령 역시 빨간 의상을 입은 채 총선 접전지역을 온종일 누빈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적어도 선거에서 만큼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행정부 수반이건만, 이러한 행위를 일삼고 있는 건 결과적으로 국민 따위는 애초 안중에도 없노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왜곡하는 행위인 데다, 심지어 공정한 선거 관리마저도 결코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반칙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박 대통령에게 남은 건 아마도 짧은 임기에 비례한 권력 누수 현상뿐이지 않을까? 이러한 결과가 벌써부터 두려운 나머지 예방 주사라도 놓으려 했던 걸까? 무슨 색상의 의상을 입든 그건 전적으로 대통령 본인의 자유 의사에 따르는 게 분명 맞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보여준 의상 관련 해프닝만 봐도 대통령은 이제껏 쭉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해왔음이 틀림없다. 다만, '오이밭에서는 절대로 신을 고쳐 신어선 안 된다'는 옛 현인들의 말씀에도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주변을 그다지 의식 않는 데다 제동을 걸 만한 세력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한 시민단체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자업자득이다.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기대를 걸기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일이겠지만, 추후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이를 지켜보는 일도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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