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스포트라이트> 결국 저널리즘이다

새 날 2016. 2. 2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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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과 뉴잉글랜드 지역의 최대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사에 어느날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국장이 새로 부임해 온다. 그의 부임 첫 일성은 다름아닌 그동안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다뤄온 '스포트라이트'팀에게, 30년에 걸쳐 수 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지역 교구 신부에 대해 심층 취재하라는 미션이다. 해당 건은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보스턴 지역 주민의 53% 가량이 가톨릭 신자에 해당하기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오히려 종교계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힐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 팀장인 로비(마이클 키튼)를 비롯, 팀원인 마이크(마크 러팔로), 사샤(레이첼 맥아담스), 매트(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는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깊숙이 파고 들면 들수록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다, 교회가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마저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아울러 가톨릭 교회에서 불거졌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스포트라이트’팀은 해당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영화는 종교계의 추악한 이면을 낱낱이 들춰낸,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다. 해당 사건은 2001년 9.11 테러 즈음에 취재가 시작되어 이듬해인 2002년이 되어서야 끔찍했던 전모가 드러난다. 성직자의 단순 일탈이 아닌, 일종의 관행처럼 암묵적으로 행해져 왔고, 또한 이 문제를 교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등 조직적인 은폐가 암암리에 시도된 정황마저 밝혀진다. 사실 극의 흐름은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만큼 평이하다. 반전다운 반전 요소도 딱히 없다. 다만, 소재 자체가 갖는 흡인력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묵직함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종교는 일종의 성역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종교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때문에 권력은 종교집단 내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종교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은 웬만해선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혹여 알려진다 해도 앞서의 이유 때문에 쉽게 덮이거나 유야무야되기 일쑤이다. 때문에 '스포트라이트'팀원들은 각기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최대한 조심스러우면서도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쳐야 했다. 피해자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채 아픔과 고통을 경청하고 기록하며, 끊임없이 주변인들을 탐문하고, 휴일조차 반납한 채 모든 열정을 오롯이 진실 추적에만 쏟아붓는다.

 

 

종교계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안위를 돕는 변호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제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변론을 담당했던 변호사 역시 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익히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눈을 감기 바쁘다. 비단 이들뿐 만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위치의 인물일수록 그에 비례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사회 구성원들의 침묵은 종교계의 오랜 범죄 관행을 암묵적으로 동조해 주는 결과에 다름아니다.

 

수 십 년에 걸쳐 행해진 이들의 범죄 행각은 사회의 방조와 묵인이 더해지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였으며, 사회적 약자 계층의 아이들이 그들의 주 표적이 된 채 고스란히 먹잇감으로 노출되어 왔다. 겉으로는 지극히 신성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으나, 감쪽 같이 감춰져 있는 종교계 이면의 추악함을 들춰내기 위한 스포트라이트팀의 취재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영화는 취재 활동을 통해 차근차근 증거물을 확보하고, 피해자나 협조자 등 사건과 연루된 이들을 직접 만나 새로운 사실들을 수집하면서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하나 둘 꿰맞추어 퍼즐을 완성해 가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처음엔 증거가 불충분하여 정황 근거만으로 접근하는 등 취재에 어려움을 겪곤 하였으나 퍼즐이 완성되어가며 비로소 눈앞에 드러나는 실체는 그야말로 충격을 더한다.

 

 

팀원들의 취재를 위한 발걸음 및 손놀림이 빨라짐과 동시에 영화는 점차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물증들을 모으고 모아, 이제 결정적인 증거까지 확보한 마이크, 마지막 한 방만이 남았는데, 더 이상의 피해자 양산을 막기 위해, 아울러 고통 받고 상처 받는 이들을 하루빨리 어루만져 주기 위해, 또한 겉 다르고 속 다른 종교계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기 위해, 이제는 제대로 폭로해야 한다며 팀원들 앞에서 한껏 언성을 높이는 장면으로부터는 내 안의 응어리졌던 무언가를 배설해내는 것처럼 통쾌한 감정이 밀려들어온다.

 

저널리즘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관람하며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언론 지형은 어느덧 저널리즘이란 용어를 무색케 할 만큼 크게 위축됐다. 여기엔 권위주의적이며 위압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옥죄어 오며 언론이 제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측면도 읽히나, 대다수의 언론은 그들 스스로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채 실재하는 사실조차 보도하지 않고 오로지 권력집단의 입맛에 맞는 가짜 보도로 일관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짧지만 그 무엇보다 강렬하다.

 

 

감독  토마스 맥카시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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