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좋아해줘> 잠자던 연애 감성 깨우는 달달한 로맨스

새 날 2016. 2. 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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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노진우(유아인)는 당대에 가장 잘 나가는 한류 스타 중 한 사람이다. 원래부터 성격이 당돌한 데다가 인기마저 치솟으니 그의 행동엔 거침이 없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달리 표현하자면 일종의 안하무인격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천적은 존재한다. 다름아닌 함께 드라마 작업을 해 나가던 작가 조경아(이미연)다. 그녀가 쓴 작품은 늘 인기 상종가인 까닭에 업계 내에서의 영향력이 상당하며 텃세 또한 심해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까칠한 두 사람의 성격이 왠지 더욱 까칠해지는 느낌은 둘의 관계가 작가와 배우 그 이상 때문은 아닐는지...

 

신출내기인 드라마PD 장나연(이솜)은 최고 작가 조경아와의 작업이 영 거북스럽고 어렵기만 하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그렇기도 하지만 그녀가 배테랑인 데다 까탈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에 부대낄 때마다 셰프 정성찬(김주혁)이 운영하는 술집에 찾아가 술 한 잔 걸치는 게 그녀에겐 유일한 낙이다. 간혹 낮술도 한 잔씩 걸치곤 한다. 작곡가 이수호(강하늘)는 어릴적 사고로 청각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상대방의 입모양만으로도 어떠한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는 등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결코 다르지 않은 대화 수준을 뽐낸다. 여기에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까지 갖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게 한없이 두렵다. 이런 와중에 먼저 접근한 건 장나연이다. 장나연의 밀당 끝에 두 사람은 풋풋한 사랑을 이어가는데..

 

 

오지랖이 하해와 같이 넓은 데다 세상사 못하는 게 없을 것만 같은 대단한 오지라퍼이자 셰프 정성찬은 한 여성과 교제 중이며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신혼집을 임차하는 등 새로운 시작에 마냥 부풀어있던 찰나이기도 하다. 정 셰프가 임차한 주택은 스튜디어스인 함주란(최지우) 소유의 집이다. 그러나 결혼까지 약속했던 상대 여성과의 관계가 틀어지며 그의 삶은 꼬이기 시작한다. 함주란 역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되는 일 하나 없다. 어느날 아껴가며 어렵사리 마련한 자금을 지인에게 투자했다가 하루아침에 모두 날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녀로부터 딱한 소식을 전해 들은 정 셰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생활할 것을 제안하는데...   

 

캐스팅이 무척이나 화려한 작품이다. 영화는 소위 잘 나가는 배우들을 대거 등장시켜 그들의 톡톡 튀는 개성만큼이나 전혀 다른 성향의 세 커플 이야기를 스크린에 동시다발로 풀어놓는다. 까탈스러운 데다 건방지기까지 한 젊은 배우와 역시나 한 성격 하는 악명 높은 당대 최고의 중년 작가, 이들의 만남으로부터는 불꽃이 팍팍 튄다. 풋풋한 청춘들의 알콩달콩한 첫사랑의 밀당은 아련한 연애 감성을 깨우는 데 있어 그야말로 제격이다. 불타오르는 청춘의 열정 따위는 이미 온 데 간 데 없고, 생활에 치여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들 나름의 매력을 발산 중인 노처녀 노총각의 겉도는 듯한 아슬아슬한 로맨스도 흥미롭다.  

 

 

노진우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인기와 젊음 모두를 소유하고 있으나, 왠지 조경아라는 깐깐한 작가 앞에만 서면 그게 잘 안 먹힌다.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십만명에 이르는 SNS 팔로워를 이끄는, 전혀 남 부러울 것 없는 한류스타 노진우는 자존심 굽혀가며 왜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데다 아이까지 딸린 마녀작가 조경아의 페이스북에서 그토록 친구 맺기를 구걸해야 했을까? 이런 게 과연 사랑일까? 그렇다면 조경아는 어떨까? 그녀라고 하여 다를까? 겉으로 볼 때엔 차갑고 도도한 데다 능력마저 워낙 출중하여 바늘 하나 들어갈 데 없을 것 같이 철두철미해 보이지만, 외려 그러한 행동은 자신의 허물과 유약함을 감추려는 방어기제로 읽힌다. 자신의 전부를 내건 노진우식 진짜 사랑을 향한 도박, 과연 이루어질까?

 

 

장나연과 이수호가 주고 받는 썸은 실제처럼 몽실몽실 아련하다. 서로가 주고 받던 간결한 페이스북 메시지 한 줄에도 온갖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상대방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지 따위의 오만 상상에 밤새 고민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첫사랑의 가슴 졸이던 과거의 기억을 아스라이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작곡가 이수호와 솔직하면서도 다소 저돌적인 장나연이 나누는 풋풋한 사랑은 청춘이기에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실 다양하다. 성격에 따라서는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더러는 주변인을 통해 발현시키는 경우도 있다. 청춘에게는 새롭거나 무언가 특별한 감정 따위가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겠지만, 이미 사랑의 열병을 모두 앓고 난 뒤인, 청춘이라는 나이와는 저만치 멀어진 이들에게는 사랑 역시 그와는 전혀 다른 양태로 다가온다. 특별함보다는 왠지 곁에 있을 때 너무도 편해 결코 알아차리기가 힘든, 상대방의 부재를 통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이러한 형태가 진짜 사랑이 아닐는지...

 

 

정성찬과 함주란은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온 배테랑들이다. 덕분에 이들의 사랑은 청춘남녀들처럼 결코 쉽게 달아오르거나 빨리 식지 않는다. 사랑의 실체란 일상 속에 배어있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그리고 배려다. 이 영화의 웃음코드는 이들 커플이 모두 만들어내고 있다. 순진하면서도 어딘가 덜 떨어진 듯한 최지우식 연기는 이 작품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김주혁의 광활한 오지랖과 능글맞은 연기는 어느덧 신의 경지에 이른 느낌이다. 

 

사랑이란 과연 무얼까?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각기 다른 세 커플의 사랑에는 묘하게도 공통점 하나가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사랑이 지닌 숙명과도 같은, 그러한 성향의 것일지도 모른다. 결핍.. 그렇다. 상대방의 결핍을 메워가며 보다 완벽해지는 과정이 바로 사랑임을 이 작품은 말한다.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톤의 극 흐름은 세상사의 시름에 구겨져 있을지도 모를 관객들의 상처난 마음을 활짝 펴게 하는 느낌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소통의 핵심 도구로 등장하는 등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세 커플의 설정은, 젊은 청춘들로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 이상의 연령층까지 고르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되게 한다. 

 

과연 사랑이 우리의 삶에 긍정 신호를 보내올 수 있을까? 이참에 잠자고 있던 연애 감성을 한 번 깨워보자.

 

 

감독  박현진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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