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대니쉬 걸> 정체성 되찾은 한 사람의 힘겨운 여정

새 날 2016. 2. 2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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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인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와 역시 화가인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부부다. 모두가 짐작하듯 부부가 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거나 관대해지며 상대방을 향한 애정 또한 더욱 깊어지곤 한다. 실제로 부부가 함께 예술 활동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이롭다. 창작 활동에서 요구되어지는 영감 따위를 상대방과의 교감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아껴가며 알콩달콩 살아가던 이들 부부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게르다는 작업을 이어가던 작품속 여성 모델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에이나르에게 대역을 부탁하게 된다. 그에게 스타킹을 신기고 여성용 구두에 드레스를 걸치게 하여 원래의 여성 모델의 외모를 완벽하게 재현하도록 한 뒤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그녀다. 그런데 여장을 한 에이나르는 이로 인해 그의 내면 깊숙이로부터 발현되는 묘한 느낌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된다. 이를 눈치 챈 게르다는 일상 속에서 그의 그러한 성향을 더욱 부추긴다. 이때부터 에이나르는 원래의 자신과 '릴리'라는 가상의 여성 사이를 오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 부부의 실재했던 이야기를 담은 데이비드 이버쇼프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미술상, 의상상 등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에디 레드메인이 마이클 패스벤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쟁쟁한 배우들과 남우주연상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관객들의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숨막힐듯 아름다운 덴마크의 풍광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시종일관 한결 같은 분위기이다. 인물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는 데 공을 들여온 아내와는 달리 에이나르는 늘 똑같은 작품 하나에 천착해 있다. 영화의 끝 지점 역시 에이나르의 작품과 맞닿아 있다. 남성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온 끝에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에까지 이르렀으나, 결국 그의 정체성은 에이나르가 아닌, 릴리라는 한 여성이었다. 에이나르가 집착하여 그리던 그림 역시 자신이 태어난 곳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그가 그림 속으로 빨려들 것 같다고 말한 건, 다름아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까닭에 올바른 그것을 찾고 싶노라는 바람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1900년대 초반 미술 시장의 흐름을 개략적으로 읽을 수 있다. 게르다가 그린 인물화는 작품성에 관한 한 인정 받고 있으나 상품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대세를 이룬다. 주변에 걸린 그림들이 온통 누드화 일색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런 류의 그림을 원했던 모양이다. 게르다가 우연히 그린 릴리 그림은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상당한 상품성을 지닌 작품이다. 실제로도 릴리의 표정으로부터 묻어나오는 묘한 중성적 이미지의 작품이 미술계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덕분에 게르다는 예술의 본 고장인 파리로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반면, 에이나르는 우연히 꺼내든 릴리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더욱 혼란을 겪으며 본격적인 방황의 길로 접어든다.

 

 

동성이 아닌 이성 역할로서의 남편을 원하던 게르다는 에이나르의 방황에 몹시도 힘들어한다. 에이나르가 릴리가 된 채 다른 남성과의 만남을 갖는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남성으로서의 남편을 더욱 갈구한다. 하지만 에이나르는 이미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스스로 릴리라는 여성 정체성을 택한 뒤다. 게르다가 어릴적 에이나르의 친구였던 한스의 접근에 흔들리는 모습은 그래서 일견 이해되면서도 애처롭게 다가온다. 

 

그나마 근래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존중 받고 있고,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상황이라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덜 힘들지만(물론 이들에 대한 대중의 색안경은 여전하다), 1900년대만 하더라도 이를 죄악시하거나 정신병자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에이나르에게 방사선 치료를 시도하거나 정신분열증이라는 족쇄를 씌우려는 다소 황당한 움직임은 그래서 일정 부분 납득 되는 상황이다. 트랜스젠더나 동성애를 혐오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땐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성 소수자에 대해 그들이 옳거나 그르다며 선을 긋지는 않는다. 다만,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실존 인물의 고통을 스크린 위에 담담히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이 더욱 주목 받고 있는 건 에이나르, 아니 릴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에디 레드메인의 놀라운 연기력 때문이다. 그의 눈빛과 손짓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로부터는 여성스러움이 뚝뚝 묻어나온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등장하지만, 에이나르가 사창가를 찾아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윤락녀의 몸짓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은, 에디 레드메인이 릴리 역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실제로 이처럼 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릴리라는 여성으로 완벽 빙의한 에디 레드메인이기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을 테며, 지난해 오스카상을 거머쥔 까닭에 이번 오스카상의 영예를 방해하는 건 오직 에디 레드메인 자신뿐이라는 농담 역시 결코 과한 게 아닐 듯싶다. 

 

 

게르다 역을 열연한 알리시아 비칸데르 또한 당차면서도 남편의 정체성 혼란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여성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청춘의 증언'을 통해 연기력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때보다 조금 더 원숙해진 데다 과감한 면모마저 읽힌다.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릴리로 다시 태어나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정체성을 되찾은 한 사람, 스스로가 동경하며 늘 그려왔던 자신의 그림속 풍광의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릴리의 스카프는, 그가, 아니 그녀가 결국 그토록 원하던 그림 속으로 영원히 침잠했음을 의미한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괴로워하며 고통을 겪다 사회적 편견과 물리적 난관 모두를 과감하게 극복한 끝에 끝내 자신이 원하던 정체성을 찾은 한 사람의 여정을 담담히 그려낸, 아름다운 영상미가 특히 돋보이는 영화다.

 

 

감독  톰 후퍼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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