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드레스메이커> 위선과 탐욕 가득한 세상에 빅엿을

새 날 2016. 2. 1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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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또래 소년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마을에서 쫓겨난 틸리(케이트 윈슬렛)는 프랑스 파리 등지를 전전하다가 자신이 디자인한 멋진 드레스를 빼입고 한 손엔 패션 디자이너의 상징이랄 수 있는 재봉틀을 든 채 수십년만에 마을에 떡하니 나타난다. 물론 그녀를 환영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어머니조차 반기지 않는다. 급작스레 뛰쳐나와 틸리를 놀라게 한 쥐 한 마리만이 그녀의 등장에 반응할 뿐이다.

 

그녀의 어머니 몰리(주디 데이비스)는 틸리가 쫓겨난 충격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 한 데다 다리마저 불편하여 항상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이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년이 지났으나 마을 공동체는 당시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다. 약국을 지키던 약사는 허리가 더욱 굽긴 했으나 여전하였으며, 어릴적 틸리 사건을 맡았던 마을 경관 파렛(휴고 위빙)은 늙었어도 아직 마을을 지키고 있다. 때문에 마을로 돌아온 틸리를 향해 마녀라며 손가락질하거나 영 떨떠름한 눈치를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전혀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 마을과 럭비 대회가 개최된다. 틸리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도발적인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 대회에 나타나 생뚱맞게 고혹적인 자세를 취하며 마을 사람들, 특히 남성들의 눈을 미혹시킨다. 이를 계기로 그녀가 디자인한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된 마을 사람들, 급기야 그녀의 의상은 인기 아이템으로 급부상하는데... 

 

'드레스메이커'는 호주 작가 로잘리 햄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시간적 배경은 1950년대이며, 공간적 배경은 호주 '던가타'라는 지역에 실제로 있었을 법한 한 마을이다. 이들을 감각적인 묘사로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소년 살해범으로 몰린 틸리는 큰 충격으로 인해 당시 상황을 온전히 기억 못 한다. 다만, 자신이 소년을 죽이지 않았다는 소신만은 확실하다. 이는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그녀를 마을로 다시 돌아오게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객관성을 떠나 당시 증거로 채택된 정황들은 그녀를 살인범으로 몰아갔으며,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틸리에게는 그러한 상황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여력이란 게 없었다. 힘 없는 그녀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억울함을 안은 채 마을에서 쫓겨난 틸리는 성인으로 성장하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인이 되어서야 자신을 돌이킬 수 없게 했던 당시 사건을 차근차근 복기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음모로부터 시작된 틸리에게 씌운 살인범이라는 낙인은 그녀에겐 족쇄가 되어 마을 전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케 한다. 그녀의 엄마도 동시에 추락하고 만다.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주류라 한다면, 틸리와 틸리의 엄마 몰리 그리고 틸리가 쫓겨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몰리를 곁에서 늘 돌봐 주던 심성 착한 청년 테디(리암 헴스워스)의 가족은 비주류로 분류된다. 몰리가 안고 있는 말 못 할 상처는 딸 틸리에게로까지 대물림된 채 마을에서는 이들을 향해 미친 사람이거나 마녀로 취급 당하게 하고 있다. 틸리를 사랑하는 테디, 지적 장애인을 형으로 둔 덕분에 테디의 가족 역시 주류로부터 벗어나 있다. 테디는 마을 전체가 틸리에게 씌운 낙인을 거부한 채 외려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저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위선과 탐욕의 집합체다. 그들의 화려한 드레스 쇼는 결국 자신들의 위선과 탐욕을 교묘히 감추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틸리를 마녀라며 손가락질하면서도 자신들의 허세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꺼이 그녀를 활용하는, 이중적인 성향은 기본 중 기본에 속한다. 던가타는 흡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틸리의 가족사는 우리에겐 그야말로 매우 흔한 막장 드라마의 한 꼭지와 닮아 있다.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나비효과는 작금의 저주를 낳게 했고, 그 저주는 생각만큼 그리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님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주류 체제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있는 비주류들의 단순한 체제 저항만으로는 견고한 주류가 잉태시킨 저주의 주술로부터 절대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처음 틸리가 접근해 올 때까지만 해도 심하게 거부하던 몰리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편에 서서 누명과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해법은 결국 그녀만이 지닌 매혹적인 드레스 디자인 능력임을 새삼 일깨우며 복수극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다.

 

 

과장된 사람들의 몸짓과 그럴 때마다 흘러나오는 괴이한 음악 그리고 감각적인 화면은 왠지 동화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앙증맞으며 예쁜 그림이 그려진, 성인을 위한 동화 말이다. 아니 한 편의 우화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나 각기 출연하는 인물마다마다에는 고유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화려한 의상쇼와 1950년대 호주 사회의 면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구한 운명을 지닌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 들어찬 이 세상을 향해 정신 차리라며 돌팔매질을 하는 느낌이다. 독특한 분위기의 수작이다.

 

 

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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