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빅쇼트> 탐욕에 찌든 월가의 민낯

새 날 2016. 1. 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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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그러니까 구체적인 시기로는 2007년 전후쯤일 것 같다. 당시 미국 금융권은 주택시장이 워낙 활황이라 모기지론을 매개로 한 채권 등의 파생금융상품 판매로 커다란 호황을 누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달콤함에 취한 덕분인지 어느 누구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금융 위기가 닥쳐오리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전 세계의 경제를 초토화시킬 만큼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변화의 조짐을 진작부터 눈치 채고 이에 대비한 이들이 있었으니..

 

모 캐피탈 회사의 대표직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는 어릴적 크게 앓은 뒤 후유증으로 인해 한 쪽 눈을 잃고 만다. 이후 그의 성격은 180도 변하여 대인 기피증을 드러내는 등 사회성이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금융 투자 영역에서만큼은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마이클 버리의 행동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집무실에 틀어박힌 채 강한 비트의 헤비메탈을 틀어놓고 분석에 몰입하거나 아예 식음을 전폐하고, 때로는 드럼 연주를 통해 의지를 불태우곤 한다. 그의 시장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곧 파국을 맞이하리라는 전망이다.

 

 

미래 전망에 대해 누구보다 확신에 찬 그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당시 분위기와 정반대로 향후 시장 가치의 폭락 상황에 베팅하겠노라며 호기롭게 골드만삭스 등 금융기관을 일일이 찾아다닌다. 물론 현장에서의 반응은 한결 같다. 겉으로는 떨떠름하나 뒤에서는 쾌재를 불러야 할 판이다. 나중에 닥칠 파국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자신들에게 이득을 거저 안겨주려는 얼간이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편, 도이체방크의 트레이더인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역시 전 세계가 거짓 호황을 누리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잔치를 벌이는 동안 시장을 예의주시한 사람 중 하나다. 우연히 그와 연이 닿게 된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은 마이클 버리와 마찬가지로 서브프라임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가치가 하락하는 쪽에 집중 투자하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실화임을 알리는 자막이 흐른다. 이 작품의 원작은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빅숏'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제목인 ‘빅쇼트’란 용어는 실제 주식 시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격이 하락하는 쪽에 베팅함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 당시만 해도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해 가며 미국 주택시장이 크게 호황을 누렸지만, 이는 얼마 못가 결국 모두의 방조와 금융권의 눈속임까지 더해지며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도록 하는 장치는 여럿 있다. 우선 극의 전개 방식이 여타의 작품과 사뭇 다르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라이언 고슬링이 중간중간에 관객에게 현재의 상황을 부가 설명하는 장면과 자칫 어렵고 낯선 금융 용어들 때문에 영화 관람 중 멘붕에 빠질지도 모를 관객들을 배려하기 위해 다양한 직종의 인물이 등장하여 여러 형태로 이를 설명하는 장면 등은 이채롭다. 실화를 다뤘다는 사실과 앞서 언급한 이러한 면면들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관람한 듯한 착각마저 든다. 아울러 월가를 비롯한 미국 금융권 전체를 향한 냉소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함인 듯 중간중간 파격적이면서도 은유적인 화면 및 대사들을 끼워넣음으로써 감독이 전달하려는 바를 매우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전후로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 중인 4인에게 각각 포커스를 맞춘 채 숨가쁘게 돌아간다. 이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운 측면도 감지되나 마치 관객이 현장에 있기라도 한 양 상당한 생동감으로 와닿는다. 헐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각기 다른 색깔의 연기력을 펼치며 급박하면서도 추악한 월가의 생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브래드 피트의 연기 변신은 놀랍다. 평소 그가 주로 맡아오던 성향의 배역과는 달리 매우 진중하면서도 도덕성을 겸비한 점잖은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때 잘 나가던 펀드 매니저를 그만두고 유기농 씨앗 종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월가의 잔혹함 덕분이다. 천문학적으로 거둬들이는 금융기관의 수익 이면엔 누군가는 그 이상의 손실을 본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의미가 감춰져 있다. 그가 금융계를 떠난 건 한 가닥 남은 윤리적 양심을 지키기 위함이다. 마크 바움이 서민들로부터 배를 불린 금융기관을 통해 자신이 고수익을 얻을 경우, 이는 곧 서민들을 착취한 결과와 같다는 지극히 도덕적이면서 윤리적인 고충 때문에 끝까지 펀드를 팔지 않았던 행위와 같은 맥락이다.

 

금융기관과 신용평가회사는 일종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같은 존재 아닐까 싶다. 실제 가치 및 신용으로 따지자면 완전히 쓰레기 수준에 불과할 채권들을 모아 금융기관이 이를 한꺼번에 묶어 패키지 형태로 파생상품을 내놓기만 하면, 신용평가회사들은 고객을 놓치지 않을 요량으로 이들 상품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AAA 등급을 경쟁적으로 부여하여 선의의 투자자들을 미혹시키고, 이는 돈을 빌린 사람들이 빚만 잘 갚으면 일정 수익을 꾸준히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인 까닭에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들은 이를 통해 전 세계의 투자자들로부터 엄청난 이득을 챙겨 왔다.

 

이미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폭주기관차를 멈출 수 있는 건 세상 천지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미증유의 금융 위기 앞에서 미국 정부는 주택시장은 안전하니 투자해도 된다며 여전히 부추기고 있고,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족족 성공을 거두며 고수익에 취한 금융기관들은 이미 수많은 투자회사들이 스러져가며 그 전조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설마하며 안이함을 드러내기 일쑤다. 리먼 브라더스의 주식이 한낱 종이 쪼가리로 전락하며 직원들은 십수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에서 잘려 나가고 투자자들의 분노 섞인 원성이 들려온 뒤에야 뒤늦게 무언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깨닫지만, 이미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에서만 800만명이 직장을, 그리고 600만명이 집을 잃었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 역시 부지기수다. 이들 대다수는 우리와 같은 일반 서민이다. 금융기관은 결국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미혹시켜 벼랑 끝으로 내몬 뒤 그의 반대급부로 엄청난 이득을 취하고 뒤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책임 지고 처벌 받은 금융기관 종사자는 단 한 사람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일선 금융기관 현장에서 늘 행해져 온 관행이 처벌의 이유였다는 말도 안 되는 스크린속 자막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당시엔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주체들이 탐욕을 좇는 바람에 기관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조차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모두가 파국을 맞고 말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렇듯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경제 위기가 한 차례 휩쓸고 간 이후에도 미국 월가의 태도는 전혀 변함이 없노라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제아무리 튼튼한 제동장치를 마련한다 해도 탐욕을 먹고사는 자본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로 볼 때 기관차의 폭주는 얼마든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지금 이 시각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융기관들은 탐욕이라는 민낯을 감쪽 같이 감춘 채 과거보다 한층 어려워진, 일반인들이라면 도무지 이해조차 힘든, 그들만의 용어로 점철된 세련되며 복잡한 각종 파생상품으로 중무장하여 또 다시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리라.

 

 

 

감독  아담 맥케이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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