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우리집 반려견의 목욕과 세차는 닮은꼴

새 날 2016. 2. 2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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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은 모르겠으나 난 차량 세차를 할 때면 적어도 일주일 분량의 장기 일기예보를 확인한 뒤 실행에 옮기곤 한다. 기껏 공들여 가며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물로 씻어내고 걸레로 깨끗이 닦은 뒤 왁스칠로 완벽하게 마감했는데, 비가 내리게 되면 대략 난감한 일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차를 한 날이면 어김없이 없던 구름이 만들어지거나 심지어 구름조차 없던 하늘에서 급작스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일쑤다. 참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차 후 적어도 2-3일 가량의 효과를 누린 뒤의 예기치 않던 비라면 공기의 흐름이 워낙 가변적이라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며 받아들일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세차를 끝내자마자 내리는 비는 그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얘기이다. 머피의 법칙? 아니면 기상청을 향해 구라청이라며 늘 매몰차게 뒷담화를 퍼붓거나 비난을 일삼아오곤 했는데 그렇다면 그에 따른 인과응보? 그도 아니면 기상청이 자랑해 마지않는 슈퍼컴퓨터가 순전히 엉터리?

 

 

그런데 우리집 반려견의 목욕도 사실 딱 그 짝이다. 별다른 집도 없이 하늘을 이불 삼아 생활하는 미르에겐 여건상 목욕을 자주 시킬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녀석을 씻기기 위해 집안으로 옮기려면 적어도 장정 두 명이 달려들어 안고 가야 할 만큼 덩치가 산 만하다. 이 추운 날, 밖에서 찬 물로 씻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때문에 이실직고하자면 이번 겨울에도 사실 녀석의 목욕은 딱 한 차례만 실시했다. 왠지 부끄부끄~ 물론 여기서도 가성비의 법칙은 여지없이 적용된다. 

 

녀석을 씻기는 일도 예사롭지 않지만, 실은 그 이후의 뒷정리는 훨씬 까다롭다. 털의 물기를 말리기 위해선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집에 있는 헤어 드라이기를 총동원시켜야 한다. 물론 무한 빗질을 통해 엉킨 털을 정리해야 하고, 간혹 뭉쳐 있는 곳은 가위로 잘라주는 수고로움도 뒤따른다. 결국 이 녀석 하나를 씻기려면 최소한 반나절의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어야 할 판국이다. 



이러니 녀석의 목욕은 여름철을 제외하고선 거의 계절별 행사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부지런하지 못한 견주의 게으름을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여름철엔 밖에 묶어놓은 채 호스로 뿌려가며 씻기고 털을 말리는 건 수건으로 대충 닦아낸 뒤 자연 채광을 통해 가능하기에 다른 계절만큼 수고롭지는 않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목욕이 더위를 쫓는 훌륭한 방식이 되곤 하는 점도 고려 사항이다.

 

 

밖에서 생활하는 녀석은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거나 흙 따위를 파며 놀곤 하니 몸 전체가 더럽혀지기 십상이다. 특히 장마철을 비롯해 비가 자주 내리는 계절이면 녀석의 몸에서는 온통 걸레 썩는 냄새로 진동을 한다. 기껏 애를 써가며 목욕을 깨끗하게 시켜놓았더니 비가 내려 온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몽실몽실 피어난다면 이처럼 허무한 일도 사실 드물 테다.

 

때문에 녀석의 목욕은 차량의 세차 기준과 완전히 일치한다. 세차의 효과를 오랫동안 유지시켜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린 일기예보, 그것도 장기예보를 먼저 확인한 뒤 실행에 옮기듯, 미르 녀석의 목욕 역시 같은 효과를 누리기 위해 세차할 때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그래서 우리집 반려견의 목욕과 차량의 세차는 완전히 닮은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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