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대형견에 대한 로망, 그 환상을 깨주마

새 날 2016. 2. 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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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누구나 한 번쯤 꿈꾸었을 법한 로망 중 하나는 덩치가 산 만한 대형견을 키워 보았으면 하는 바람 아닐까? 넓다란 정원에 대형견을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노는 장면을 다들 머릿속에서 한 번쯤은 그려 보았음직하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에서 이러한 장면이 자주 연출되는 탓에 갖게 되는 환상이란 사실을 애써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드시 넓은 정원이 아니더라도 - 근래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대세인 터라 이는 현실적으로 접하기가 어려운 조건 중 하나다 - 왠지 특정 견종이라면 살아 생전에 한 번쯤 키워 보았으면 하는 속내가 다들 있을 테다.

 

그렇다면 대형견을 키우는 일이 과연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지는 장면처럼 마냥 멋지고 즐겁기만 한 걸까? 멋진 장면의 이면에는 늘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실 어떠한 애로 사항이 있는지를 일반인들이 구체적으로 알기란 여건상 그다지 녹록지가 않다. 이 포스팅에선 내가 대형견을 직접 키우며 느꼈던 사항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놓으려 한다. 이를 통해 대형견에 대한 로망이 더욱 부풀려질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산산조각날 수도 있겠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역시나 공간이다. 가장 바람직한 건 너른 마당이 갖춰져 있는 전원주택 같은 환경이지만, 땅 덩어리가 좁아 터진 관계로 인구의 다수가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데다 거주 여건이 대부분 공동주택인 탓에 실상 마당을 갖춘 집은 현실 속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렇다면 실내에서 키워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로부터 파생되는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닌 탓에 솔직히 실내에서의 대형견 키우기란 상당한 고난이도의 미션에 속한다. 크기 불문하고 마당이 갖춰져 있어 실외에서 키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형견의 경우 활동량은 무지막지하기가 이를 데 없다. 소형견이라면 실내에서 왔다갔다 하는 정도로 그들에게 필요한 활동량을 모두 채울 수 있다지만, 대형견이라면 사정이 영 딴판이다. 쉼없이 움직이고 뛰어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실내에선 무리 아닐까 싶다. 물론 자주 산책을 다니며 부족한 활동량을 메울 수는 있겠다. 이는 결과적으로 견주가 그만큼 부지런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점을 견주 스스로 감수할 수 있다면 실내에서의 대형견 키우기가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걸로 읽힌다.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할 경우 개에게나 사람에게나 모두 못할 짓을 하게 되는 셈이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다가오는 건 배변 문제다. 덩치가 큰 만큼 많이 배출한다. 소변이면 소변, 대변이면 대변 가릴 것 없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사방에 영역표시를 해놓는 건 기본이고, 배설기관 본연의 임무랄 수 있는 소변을 통한 노폐물 배설량도 상당하다. 견주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어느덧 집 전체는 개가 배설해 놓은 흔적과 향기로 인해 온통 엉망이 된다. 대변의 경우 성인 한 사람 분량의 서 너배쯤을 매일 내놓는다. 신기한 건 먹는 양은 그리 많지 않은 데 반해 소화기관을 거쳐 배출되는 찌꺼기의 양은 그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실외에서 키운다면 매일 이를 정리하면 될 노릇이나, 실내에서 키울 경우 과연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나조차도 의문스럽다. 

 

 

털갈이는 털가죽을 두르고 있는 모든 반려동물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형견은 덩치가 큰 만큼 여타의 동물보다 훨씬 큰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집 개의 경우 초여름이 털갈이 시즌인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뽑힌 털로 털옷을 만들어도 될 정도의 분량이다. 제때 정리해 주지 않으면 절로 뽑힌 털들로 주변이 엉망이 되기 일쑤이고, 마구 날아다니며 환경마저 오염시킨다. 역시나 이를 예방하려면 견주가 부지런해야 한다. 실내에서 키울 경우 그 털을 모두 어찌 감당할 수 있을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

 

힘이 천하장사다. 소형견과의 물리적인 부피를 비교해 보면 단순히 수십배 정도로 차이가 벌어지나 대형견이 지닌 힘은 소형견의 수십배가 아닌 적어도 수백배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충분하다 싶을 만큼 튼튼하게 쳐놓은 울타리도 녀석이 가한 단 몇 차례의 공격만으로도 쉽게 부숴지거나, 플라스틱 밥그릇은 녀석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락한 채 산산조각나기 일쑤다. 녀석은 반갑다며 앞발로 툭 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맞는 사람의 입장에선 강력한 한 방이 되어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즉, 예측 가능한 범주를 벗어날 만큼 가공할 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난 분명 개를 키운다고 입양해 왔으나, 알고 보니 괴수였던 셈이다.

 

사료는 생각보다 많이 먹지 않는다. 물론 이는 우리집 개(말라뮤트)만의 특성일 수도 있다. 밥그릇 한 가득 사료를 채워 놓으면 필요할 때마다 알아서 비운다. 10킬로그램짜리 사료 하나로 20일 남짓 버티는 게 가능하다. 덩치와 활동량에 비하면 식사량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미용과 관련한 비용은 딱히 들지 않는다. 밖에서 생활하는 탓인지 귓병에 걸리기가 쉽고, 가끔 눈병에도 걸린다. 피부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당한 관심도 요구된다. 말라뮤트의 경우 별도의 집이 필요 없다. 하늘을 이불 삼아 자고, 추위를 벗 삼아 놀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파가 들이닥쳐도, 심지어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도, 밖에서 자거나 생활 가능하다. 집을 마련해 주어도 스스로가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고려해 봐야 할 점은 비단 대형견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모든 반려동물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반려동물 역시 사람과 같은 생명체다. 이를 입양할 땐 반드시 생명체를 키우는 데 있어 요구되어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노라는 약속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주인의 버림을 받은 채 길바닥 위로 내버려지고 있다. 이들은 동물보호소 등에 맡겨져 일정 기한 내 주인이 찾지 않을 경우 모두 안락사되는, 비극적인 운명에 놓이게 된다. 생명체를 다루는 일은 단순히 사람의 욕심만 채우거나 앞세우는 일이 아닌, 한 생명체가 생을 다할 때까지 성심성의껏 돌봐 주어야 할 의무가 함께 따른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이에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애시당초 입양 자체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자, 어떤가? 비단 대형견이 아니더라도 반려동물 한 마리를 키운다는 건 많은 인내와 노력 그리고 세심한 관심 따위가 필요한 일 같지 않은가? 게다가 대형견의 입양은 작은 동물보다 더 많은 현실적인 제약들로 가득하다. 덕분에 이러한 문제 앞에서의 로망은 한낱 꿈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생명체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대형견이건 소형견이건 간에 이를 입양하는 일은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자, 이래도 대형견에 대한 로망은 여전한가? 그렇다면 멋진 놈으로 한 마리 입양 받아 소박한 꿈을 이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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