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반려견, 날 것 그대로의 산책이 필요하다

새 날 2016. 2. 2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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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와의 동네 산책은 여전히 힘에 부치는 일이다. 산책을 위한 준비 단계 만으로도 진작부터 녀석은 설레는지 도통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결코 나무랄 바 아니나, 큰 덩치로 인해 펄쩍펄쩍 뛰는 일 만으로도 우린 뒷수습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대문 밖을 나서자마자 녀석은 뛰쳐나갈 기세로 전력을 다해 앞발을 힘껏 내딛는다. 녀석의 이러한 성향을 모르는 사람이 리드줄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면, 자칫 끌려가다 그만 줄을 놓쳐버리기 십상일 테다.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몇차례 연출되었고, 그럴 때마다 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녀석의 힘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앞을 향해 치고 나가는 순간적인 힘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알래스카 눈밭에서 썰매를 끌 만큼 골격과 근육이 발달돼 있다는 세간의 정보는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더구나 흥분한 상태의 녀석은 절대로 자기 스스로 힘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 한다. 리드줄을 잡고 있는 나로선 잔뜩 긴장한 채 줄을 쥔 손에 모든 힘과 신경을 집중시켜 녀석의 진행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이른바 힘빼기다. 물론 녀석의 힘도 빠지지만, 그 결과 나 역시 수 분 만에 녹초가 되고 만다. 기싸움(?)은 적어도 5분 이상 지속된다.

 

 

하지만 순간적인 힘이 빼어난 만큼 그의 반대급부로 지속력이 약하다는 건 녀석이 지닌 약점이다. 힘빼기 내지 기싸움의 단계가 끝나면 녀석은 이내 곧 수그러든다. 비로소 산책다운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잔뜩 긴장한 채 온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던 리드줄로부터 스르륵 힘이 절로 빠지며 온몸이 이완된다. 어느덧 보폭이 녀석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이 단계에까지 이르기란 생각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물론 미르에 대한 훈련 부족을 탓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수긍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책 시 반려견이 절대로 견주보다 앞서나가게 해선 안 된다고 한다. 첫 산책 시점부터 목줄을 이용하여 미르가 나의 보폭과 걸음 속도를 추월하지 못 하도록 견제하며 훈련을 거듭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결과는 애시당초 없었을지도 모를 일일 테다. 그러나 난 이를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반려견 저마다가 지닌 성향과 본능은 생김새가 각기 다르듯 천양지차이거늘, 녀석에게 특별한 훈련이 가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해당 견종 만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고유 특성을 그대로 인정해 주면서 오히려 견주와의 교감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분명히 그러하다. 

 

녀석이 훈련에 길들여진 채 자신 만의 고유한 본능을 잃어버린 상황이 아니라면 산책 도중 분명히 뛰고 싶은 경우가 있을 테다. 특히 미르는 무한 질주본능을 지닌 녀석이다. 산책 도중 녀석이 뛰기 원한다면 난 기꺼이 함께 뛰어준다. 물론 녀석의 달리기 솜씨는 그 뒤를 쫓다 보면 나의 심장을 터트리게 할 만큼 출중하기에 나로선 많이 버거운 편이다. 그래도 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반려견이 주인의 눈치를 살피도록 훈련된 결과와는 정반대로, 견주가 반려견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형태에 해당한다.

 

 

뛰거나 걷고, 또한 쉬다 보면 어느새 녀석도 나와의 움직임에 동화된 듯 내 보폭을 자연스레 맞추며 걷다 슬쩍 뒤를 쳐다보곤 한다. 나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 큰 눈을 연신 꿈벅이며 나와 눈을 맞추는 녀석이다. 이 순간, 우린 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원하는 바를 스캔한다. 어느새 호흡 속도마저 닮아가는 느낌이다. 거친 산책 끝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셈이다. 

 

반려견이 사람의 말을 잘 따르도록 훈련 시키는 일, 물론 중요하다. 허나 내가 직접 경험해 본 바로는 반드시 그런 것 만도 아니다. 다소 거칠거나 견주가 힘에 부치는 대가가 따르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과 동물이 진정 상호 간의 교감을 넓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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