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본질 벗어난 불우이웃돕기, 씁쓸하다

새 날 2015. 12. 2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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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글로벌 의류회사가 헌 옷을 수집해 난민에게 지원하는 '1,000만벌의 도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의류 회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헌 의류를 수집하여 난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자원 재활용에 기여함과 동시에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겠노라는 일종의 사회 공헌 활동인 듯싶다. 그런데 애초 좋은 취지와는 달리 회사가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사회 공헌 활동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모양새를 띠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회사는 지난 11월부터 전 세계 17개국에서 헌 옷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 중 우리나라에서만 4개월 간 10만벌을 수집하기로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후로 어떠한 그림이 그려지게 될는지는 보지 않고서도 너무도 뻔한 노릇이다. 마치 회사의 매출액 목표를 정해놓고 실적을 체크하며 이의 달성을 독려하기라도 하듯, 부서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헌 옷 수집 실적을 깨알 같이 적어놓은 채 서로 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음이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다. 인사 고과에 반영하겠노라는 으름장 아닌 으름장도 뒤따랐을 법하다.

 

ⓒ한국일보

 

이로 인한 폐해는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심지어 입던 옷을 내놓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의 헌 옷 수거함을 뒤져 수백 벌을 가져온 직원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사람들 저마다에게 놓인 처지가 다르듯이 헌 옷을 구할 수 있는 환경 또한 모두 제각각이라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이와 같은 압박은 어느덧 직원을 넘어 협력업체로까지 이어져 이들 역시 때아닌 헌 옷 수집에 나서고 있으며, 이를 실적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빚고 있다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울한 소식도 전해진다. 이쯤되면 이 회사는 주변에 널린 헌 옷을 모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헌 옷을 마련하기 위한 고생과 노력은 직원과 협력업체가 도맡아 하고, 그에 따른 온갖 생색은 회사가 내고 있는 셈이 아닌가. 회사와 직원 및 협력업체는 엄연히 갑과 을의 관계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회사가 자신들의 사회 공헌 활동마저 을에게 실적으로 할당하여 강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는 일종의 갑질이 집단적으로 행해진 결과로 볼 수 있는 사안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비단 해당 회사만의 문제는 아닐 테다. 실은 정부가 그동안 이러한 관행에 발벗고 나서 왔던 경향이 크다. 연말 등 특별한 시기만 되면 기업들에 기부금, 성금, 각종 협찬 등을 요구하며 기업체의 평판과 규모에 비례해 금액을 할당해 오곤 했던 탓이다. 일례로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의 경우 삼성에 500억원을 할당하고, 나머지 기업들 역시 이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할당하는 그러한 방식이다.

 

지난 9월 '청년실업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청년희망펀드 역시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어 비난을 자초한 바 있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기금을 마련하여 젊은층의 일자리 창출에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모금이 시작됐건만, 실제로는 기업들로부터 강제로 걷는 이른바 준조세의 모양새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부 금융권 등 기업들은 직원들에게까지 강제 가입을 종용하면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몇해 전 한 지자체에서는 강제성을 띤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활동이 알려져 빈축을 산 적이 있다. 마을별로 담당 공무원을 지정한 뒤 목표액을 채울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고스란히 마을 이장들에게까지 할당되어 부담을 전가시켰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각 지자체에서는 성금 목표액 달성을 위해 공무원과 통장 이장들에게까지 할당량을 정해놓은 뒤 여전히 예의 방식대로 강제로 모금 중일 테니 말이다. 통장이나 이장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구걸해야 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그려지는 건 비단 나뿐일까?

 

ⓒ한국일보

 

과정이 중요치 않다면, 이유야 어떠하든 그 결과물이 불우한 이웃에게 골고루 돌아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 구석을 조금 더 환하게 비추거나 따뜻하게 할 수 있기에 굳이 문제 삼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같은 사회 공헌 활동이 반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건 애초 취지에 걸맞지 않은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 못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에 공헌하겠노라며 정부가 지자체와 기업에, 그리고 기업이 직원과 협력업체에 내리 갑질하는 관행은 불우한 이웃을 돕기보다 오히려 정작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 이웃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행위가 아닐까?

 

전술한 의류회사는 올해 국내 패션업계로는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 기업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내놓은 기부금은 고작 75만원에 불과하다. 이를 놓고 볼 때 어쩌면 을의 입장인 직원과 협력업체를 활용하여 봉사 활동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한 그간의 행위는 결코 우연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한 사회 공헌을 바란다면 이러한 방식보다 차라리 자신들이 판매하고 있는 새 옷을 그냥 온전히 기부하는 게 본래의 취지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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