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기계 도핑' 등장, 스포츠 정신은 어디로 갔나

새 날 2016. 2. 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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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에서 체력을 극도로 발휘시켜 좋은 성적을 올리게 할 요량으로 선수에게 심장흥분제, 근육증강제와 같은 금지약물을 투약하거나 주사 또는 특수한 의약적 처치를 하는 일을 흔히 도핑이라 일컫는다. 이는 지나친 승부욕이 낳은 반칙 행위 중 하나로, 지난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사이클 선수가 흥분제를 사용했다가 경기 중 사망한 사례가 계기가 되어 1968년 그레노블 동계 올림픽 대회 당시부터 선수의 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하는 도핑검사가 정식으로 실시되기 시작했다.

 

도핑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영예를 한 순간에 잃은 스포츠 스타의 사례를 우린 숱하게 보아왔다. 도핑 행위가 대중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가장 공정해야 할 스포츠 경기의 기본 틀을 아예 깨버리는 파렴치한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극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선수들을 향한 대중들의 경외와 찬사를 일시에 속이는 행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그런데 점입가경이다. 이러한 반칙행위가 '인간 도핑'을 넘어 어느덧 '기계 도핑'으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도핑 하면 앞서 살펴봤듯 으레 약물에 의한 인간의 신체적 변화를 생각하기 쉬운데, 왜 '기계 도핑'이라 일컫고 있는 걸까? 최근 한 명망 있는 국제 사이클 대회에서 자전거에 초소형 모터를 숨겨둔 선수가 적발됐다. 결국 여기서의 '기계 도핑'이란 약물이 아닌 기계적 장치를 의미한다. AFP 통신은 “자전거 바퀴나 프레임에 몰래 모터를 장착해 선수가 인공적으로 스피드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기계 도핑’(mechanical doping) 사례가 공식적으로 발견됐다. 기계 도핑의 존재가 최상급 국제대회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하며,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기계 도핑'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자전거는 사람에 의해 가해진 힘이 페달을 통해 크랭크와 체인을 거쳐 뒷바퀴에 전달되어 달리게끔 하는 구동원리를 갖췄다. 외국의 한 매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다름아닌 자전거라며 치켜세운 바 있다. 왜냐하면 이는 화석연료나 전기에너지 등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사람의 힘만으로 이동거리를 단축시켜주는 획기적인 친환경 제품이기 때문이다. 사이클 대회는 이러한 친환경 발명품의 대명사 격인 자전거를 활용,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만들어진 멋진 스포츠 경기 중 하나다.

 

하지만 자전거에 전기적 장치인 모터를 장착했다는 건 이미 우리가 익히 알던 자전거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결과로 보인다. 사이클 대회가 전기 자전거의 성능을 시험하는 대회가 아닌 이상 이러한 행위는 무척 비겁하다. 험준한 산악코스와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사이클 대회 속성상 비록 아주 작은 동력이라 하더라도 이를 지원받게 될 경우 실질적으로 경기 전반을 지배하는 건 식은 죽 먹기가 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이는 인간 도핑보다 더욱 가혹한 반칙 행위이다. 

 

 

가령 장대의 탄성력을 이용, 도움받기 한 채 높이 날아오르는 장대높이뛰기라는 경기를 한 번 이에 빗대어보자. 만약 장대에 특수한 기계적 장치를 설치하여 일반 장대와 달리 월등한 탄성력을 지니게 했다면, 이미 다른 선수들과의 공정한 경기를 벌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아니면 조정 경기처럼 온전히 사람의 힘에 의해 승부를 가르는 경기에서 남몰래 모터를 장착하여 이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이런 사례가 이미 적발되었다는 건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그동안 소문이 무성했던 것처럼 암암리에 비슷한 사례들이 만연해 왔을 개연성을 높인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프랑스 파리-루베 클래식에 출전한 스위스 선수인 파비앙 칸세라라가 경기 중 비정상적인 가속을 보인 사례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대중들에게 있어 사이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아마도 '사이클 황제'라 불리던 랜스 암스트롱이 아닐까 싶다. 그는 고환 암을 극복하고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회 연속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면서 최고 자리에 올랐으나, 2012년 약물 사용 사실이 밝혀지면서 추락하고 말았다. 암스트롱의 사례처럼 인간 도핑에 이은 기계 도핑이 또 한 차례 스캔들로 비화할 것인지 국제 사이클계가 잔뜩 긴장하는 눈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며 이에 열광하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얻을 수 있는 건 그 어느 경우보다 공정한 룰 속에서 갖은 역경과 한계를 극복한 선수, 아니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른바 스포츠 정신 따위 말이다. 물론 스포츠 선수에게 있어 승부욕이 빠지게 될 경우 이는 팥 없는 단팥빵과 매한가지라는 건 잘 안다.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적인 승부욕이 반드시 옳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렇듯 반칙 행위가 만연하게 된다면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공정성의 붕괴로 경기장은 대중들에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기억되기 십상일 테고, 이러한 결과는 특정 경기만이 아닌 스포츠 전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될 테니 말이다.

 

ⓒ머니위크

 

순전히 우연한 결과였겠으나 첫 도핑 테스트의 계기가 됐던 스포츠 종목도 다름아닌 사이클이었다. 이로써 첫 '기계 도핑'의 사례 또한 사이클 종목이 불명예를 안게 될 공산이 커졌다. 배후와 정황을 정확히 따져 봐야 할 노릇이긴 하나 이번 결과는 사이클 대회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치고 있는 데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력, 그리고 선수들의 삐뚤어진 승부욕이 한데 어우러진 비정상적인 결과물로 읽힌다.

 

이번 사례로 인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여 좋은 성과를 이뤄낸 스포츠계 전반의 여타 선수들마저 모두 도매금으로 넘겨진 채 의심의 눈초리가 덧씌워지는 현상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몇몇 사람의 일탈이 전체를 흐리는 경우는 비단 스포츠계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흔히 빚어지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난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도핑 스캔들로 하루아침에 몰락했던 암스트롱과 같은 사례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사라져가는 스포츠 정신이 아쉽다.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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