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쯔위 사태, 그녀의 사과가 안쓰러운 이유

새 날 2016. 1. 1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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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해도 쯔위의 인기는 분명 하늘마저 뚫을 기세였다. 쯔위가 모델로 출연한 한 통신사의 스마트폰 광고는 그녀의 치솟는 인기를 더욱 촉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복병이 슬그머니 그녀의 발목을 잡고 만다. TV 광고속 그녀의 깜찍발랄하던 모습은 감쪽 같이 사라졌다. 다소 어이없는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한 쯔위가 연출 과정에서 방송제작진의 권유에 따라 대만 국기를 흔들었고, 공중파 방송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이 장면이 노출되었는데, 지난 8일 대만 독립에 반대해 온 대만 출신 가수 황안이 이를 중국 인터넷에 올리면서 작금의 어이없는 사태로까지 불거지게 된 것이다. 

 

ⓒSBS

 

이번 사태로 쯔위 본인과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사장이 최근 대만기 논란에 대하여 직접 사과하며 사태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물론 쯔위는 방송에 출연하여 대만기를 흔들 당시에도 그랬지만, 정황상 사과조차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읽힌다. 그녀는 이번 사과를 통해 "중국은 하나밖에 없으며 해협양안이 하나이고 전 제가 중국인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중국인으로 해외 활동하면서 발언과 행동의 실수로 인해 회사, 양안 네티즌에 대해 상처를 드릴 수 있는 점에 매우 죄송스럽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쯔위가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토록 호들갑들인 걸까. 그러나 단언컨대 그녀에겐 전혀 잘못이 없다. 물론 그녀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사과해야 할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번 사과가 트와이스의 중국 활동 중단 소식이나 소속사의 다른 그룹마저 중국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는 와중이라 이를 진화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으로 짐작되긴 하지만 말이다.  

 

 

새삼 중국의 놀라운 파워를 확인시켜 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볼 때 쯔위는 중국과 대만이라는 양안 관계의 희생양에 가깝다. 양안의 두 국가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불과한 그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만 언론들은 연일 쯔위 사건이 대만에서 차이잉원이 총통으로 당선되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며 치켜세우기 바쁘다. 잔인하다.

 

이쯤되면 단순히 춤과 노래가 좋아 우리나라로 건너와 열심히 끼를 발휘하던 16세 소녀에게 씌운 어른들의 낙인 내지 족쇄 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쯔위는 이제껏 하나의 중국이나 대만의 독립과 같은 지극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표명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애초 그런 이슈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을 테며, 앞으로도 주욱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국기를 흔든 사실이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이며, 게다가 억지 사과까지 강요하도록 해야 했는가 싶다. 이러한 결과가 아직은 여리디 여린 청춘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는 건 아닐는지..

 

케이팝도 하나의 산업이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의 기틀을 유지하던 기존 산업들이 맥을 못추는 바람에 수출마저 감소하고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그나마 케이팝과 같은 콘텐츠 산업이라도 활성화되고 있는 건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 또한 중국 시장을 빼놓고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음을 이번 쯔위 사태로 여실히 증명됐다. 쯔위 소속사 박진영 사장이 쯔위에게 공개 사과문을 낭독하도록 강요한 결과나 본인이 직접 사과하고 나선 건 그만큼 케이팝을 향한 중국의 영향력이 지대함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스포츠서울

 

케이팝의 가장 큰 고객이랄 수 있는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작 16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의 생각이나 의사 따위는 철저히 무시한 채 공개 사과를 시킨 JYP엔터테인먼트나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리던 쯔위가 등장한 광고를 발빠르게 전격 중단한 모 통신사의 어딘가 모르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은 보는 나로서도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응은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됨은 물론이거니와, 중국에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셈이라 찜찜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세련되고 합리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아무쪼록 쯔위 그녀가 이번 사태로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탐욕스런 어른들, 그리고 국가간 헤게모니 다툼과 정치판의 희생양이 된 그녀, 이러한 모순된 상황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녀가 애초 지닌 끼와 꿈을 제대로 발휘하여 지금보다 더욱 높이 훨훨 날아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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