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단통법, 책통법.. 이번엔 맥통법인가

새 날 2015. 11. 2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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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책통법, 그리고 이번엔 맥통법인가? '국민 통신비 절감’이라는 대통령선거 공약으로부터 비롯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은 세상 풍경을 참 많이도 바꿔 놓았다. 이를 시행한 정부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으나 나를 비롯한 다수의 시민들은 이로 인한 불만이 되레 높다. 책통법이란 별칭은 아마도 그로부터 비롯된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제도인 도서정가제가 시행될 때에도 네티즌들은 아스라한 단통법의 추억을 떠올리며 주저없이 책통법이란 이름을 갖다 붙였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시 '맥통법'이 등장한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도매가격 이하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국세청 고시를 어기고 대대적인 할인 판매를 하고 있는 수입맥주업체에 대해 역차별이라며 이를 규제하는 이른바 맥통법이 도입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잇따른 것이다. 물론 정부는 언제나와 같이 이에 대해 부인하고 나선 입장이다. 수입맥주 가격 할인을 규제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국민일보

 

이렇듯 정부는 맥통법의 시행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겠노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말을 100% 믿는 이들은 별로 없는 듯싶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그동안 정부가 시민들의 뒤통수를 한 두번 쳐 온 게 아닌 탓이다. 담뱃값 인상만 해도 그렇다. 국민건강증진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운 채 이를 강행했지만, 잠시 줄어드는 듯싶던 담배 판매는 금세 예년 수준을 회복했고, 정부는 이로 인해 늘어난 담뱃세만 두둑이 챙기고 있는 모양새다. 어디 그 뿐이랴. 흡연자에 대한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는 일방적인 금연정책 덕분에 거리로 쏟아져나온 흡연자 무리, 이들로 인해 이젠 비흡연자들까지 고통을 호소해야 할 판국이다. 

 

단통법 역시 국민 통신비 절감이라는 달콤한 명분을 앞세운 바 있다. 그동안 단통법이 가계 통신비를 낮추는 핵심 요인이라고 홍보해 왔다. 단말기당 평균 가입요금이 지난해 4만5155원에서 올해 3만9932원으로 11.6% 줄어든 것이 단적인 예란다. 아울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통신비가 단통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정도 낮아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동통신회사의 올 3분기 통계에 따르면 단말기당 평균 가입요금은 월 3만5144원에서 3만4734원으로 월 410원, 고작 1% 줄었을 뿐이다. 게다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경우 통신비 지출은 월 3만4628원에서 3만6601원으로 월평균 1972원, 오히려 전년 대비 5.7%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지난 1년 사이 1000개가 넘는 영세 휴대폰 판매점이 폐업한 건 단통법이 잉태한 후폭풍의 한 단면이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비싸진 휴대폰 덕분에 나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은 단통법 시행 이전에 미처 바꾸지 못해 수년째 사용해 오고 있는 구닥다리 기계를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긍정적이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에서 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 지금도 난 오래된 이 구형 고물 단말기에 혹여 이상이라도 생길까 봐 또는 바닥에 떨구어 고장이라도 날까 봐 노심초사 아껴가며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볼 때 최근 맥주 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맥통법의 시행이 전혀 근거 없는 헛소리만으로 그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우선 국내 맥주 제조사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맥통법 시행이 불거지게 된 이유에는 국산 맥주업계의 수입 맥주 업체가 도매가격 이하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국세청 고시를 어기고 대대적인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는 역차별 주장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수입업체가 도매 가격 이하로 맥주를 판매하는 것은 현행 규정에 있어 전혀 문제의 소지가 없으며 개별 기업의 가격 정책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데다, 국세청 고시를 위반할 경우 국세청이 해당 업체의 행태를 바로잡을 것이기에 맥통법이란 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라는 정부의 설명이 덧붙여지긴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여전히 국내 맥주 제조사들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 대변을 자처하고 나서 이로 인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맥주 제조사들이 수입맥주의 할인판매가 '꼼수'라고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실제 원가도 국내 맥주보다 크게 저렴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한 건 현행법상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보다 30% 이상 저렴한 주세율을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며, 대략적인 생산원가조차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문제의 근원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맥주제조사 관계자는 "수입맥주를 국산맥주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 아니다. 국산 맥주보다 적은 세금을 내면서 많은 마진을 남기고도 1년 내내 할인해주는 것처럼 마케팅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가끔 맥주를 사다 마시는 소비자의 입장이기에 국내 맥주 제조사들의 하소연이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하지만 한 명의 소비자로서의 국내 맥주 제조사에 대한 불만은 사실상 그들이 현재 토로하고 있는 앞서의 불만 따위를 크게 뛰어 넘고도 남는다. 근래 수입맥주의 판매량이 대폭 늘었다. 나도 가끔 즐기는 편이라 직접 체감하고 있다. 물론 맥주 제조사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대형 마트 등에서의 대대적인 할인 마케팅 효과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란 사실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건 소비자들이 무조건 저렴한 가격이라고 하여 수입맥주를 사먹지는 않는다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큰 폭의 할인을 한다 해도 수입맥주가 국산맥주 가격에 비해 비싼 건 여전한 탓이다.

 

ⓒ뉴스1

 

그렇다면 우린 왜 값싼 국산맥주를 마다하고 비싼 수입맥주를 찾는 걸까? 다름아닌 맥주도 엄연한 식품이기에 맛의 경쟁력을 갖췄느냐의 여부가 판매 인기의 비결로 작용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국산맥주는 수입맥주의 그것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약간 비싸더라도 수입맥주를 사다 마시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약간의 비용이 더 들더라도 맛을 통해 그 이상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나의 입장에선 맥주 제조사들의 불만이 이해되기 보다 되레 자신들이 정작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한 채 시장 보호만을 주장하고 있는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으로만 비칠 뿐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더 나아가 정부를 부추겨 맥통법의 시행을 통해 기호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택 권한마저 강제로 빼앗으려는 발상은 몹시도 괘씸하게 다가온다. 

 

결국 품질 경쟁력이 관건인데, 우리 맥주 제조사들은 정작 그에 대해선 외면한 채 기껏해야 수입맥주의 마케팅이나 가격 더러 꼼수라 부르며 이의 규제를 노래 부르고 있으니, 결코 바람직스런 행태는 아닌 듯싶다. 온갖 규제를 풀어주고 갖은 혜택을 안겨주며 기업에 힘을 실어주던 그동안의 정부 정책 기조를 놓고 볼 때 이런 상황에서 맥통법이 등장하지 말란 법은, 반드시 같은 형태는 아니더라도, 단언컨대 없다. 기업의 편에 서 있는 정부와 이러한 정부의 힘에 기대려는 기업,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제아무리 근거 없다며 손사레 치는 맥통법이지만, 완전히 실현 불가능한 결과가 아닐는지도 모를 일이다. 난 이러한 현실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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