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마담 보바리> 불멸의 고전을 뛰어난 영상미로 승화한 걸작

새 날 2015. 12. 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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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미아 와시코브스카)는 매우 보수적인 집안의 농민 딸이다. 그녀는 성실한 캐릭터의 젊은 의사 샤를르 보바리(헨리 로이드-휴즈)와 결혼하여 무언가 낭만적이면서도 화려한 일상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다. 남편은 나무랄 데 없이 자상한 데다 가정적인 사람이었지만, 시골의사 아내로서의 생활은 그녀가 막연하게 꿈꾸어 오던 그런 것들과는 많이 달랐던 탓이다. 어느덧 권태라는 괴물이 그녀의 온몸을 지배해 오기 시작한다. 엠마의 권태는 일종의 무서운 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다. 그녀 앞에 법률을 공부하던 젊은 청년 레옹(에즈라 밀러)이 나타난다. 레옹은 엠마에게 첫눈에 반하는 바람에 사랑을 고백하게 되지만, 아내로서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그녀는, 내심 자신도 그에게 끌리면서도 굳이 겉으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레옹은 더 큰 미래를 그리겠노라며 파리로 떠나고 만다. 엠마에게는 사실상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뒤늦게 후회하는 엠마, 그러나 그녀만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방법이 무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또 다른 남자에게로 관심을 돌린 그녀다. 어느날 남편과 함께 초대된 사냥 대회에서 루돌프라 불리는 후작을 만나 그의 매력에 빠져드는데...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고전소설 '보바리 부인'이 이 작품의 원작이다. 오늘날엔 다소 황당하게 와닿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 소설이 첫선을 보였던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숙해야 할 아내가 외간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행위는 문학 속에서 활자로 묘사되는 일만으로도 외설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야 했다. 이 작품 역시 공중도덕 및 종교적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작가인 플로베르가 피소되는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다행히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긴 했으나, 이러한 사건만으로도 당시의 사회상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충분히 가늠케 하고도 남는다.



보바리 부인이 출간될 당시엔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사조인 사실주의 논쟁이 거세게 일던 때다. 플로베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비평가들은 그를 향해 묘사의 대가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작품속 문체가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플로베르의 노력과 집념은 보바리 부인의 집필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4년이 넘게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그의 문체에 대한 집착과 작품에 대한 몰입은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상투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나 진부한 관용법 그리고 반복 따위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았단다.

 

 

2014년 3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리젠테이션 초청작이기도 했던 이 영화는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충실히 살리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름다운 프랑스 시골 마을의 풍광 및 때와 장소가 바뀔 때마다 엠마의 몸에 걸쳐지는 온갖 색색의 알록달록 화려한 의상만으로도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느낌이다. 때로는 날카롭게 파고 들거나 때로는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클래식한 선율은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하고도 남는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마치 초겨울의 흑백톤과도 같은 칙칙한 느낌의 다소 황량한 날씨와 포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늘상 질척거리는 프랑스 시골마을의 거리는, 흡사 엠마의 불안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어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다니는 위태로운 마음을 표현하는 듯싶다. 안에는 꽉 조이는 코르셋을 착용하고, 겉에는 화려함 일색의 원피스로 두른 채 의상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멋진 모자를 눌러 쓴 엠마이건만, 이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거나 본질을 감추고자 하는 일탈 욕망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누가 감히 엠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녀가 일삼았던 고뇌와 방황은 어쩌면 '보바리즘'이란 용어 안에 그 의미가 모두 응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보바리즘이란 용어의 등장은, 물론 고전 '보바리 부인'의 인기를 가늠케 하는 척도이기도 하지만, 엠마의 병적 증상으로부터 비롯된 바 크며, 이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미래를 향한 꿈이 현재를 지배하는, 일종의 정신병을 지칭하기도 한다. 즉, 과거 때문에 미래가 이상화되고, 현재란 그저 끝없는 환멸과 기쁨의 연속일 뿐, 현실 도피의 세계로밖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녀의 일탈 행동이 비록 우리의 보편적인 도덕적 관념으로부터 한참이나 벗어나 있긴 하지만, 이렇듯 병적인 증상이 그 원인이라고 하니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앞서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는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한다. 보바리 부인을 쓴 플로베르가 소설의 문체 등 묘사와 표현에 심혈을 기울여 해당 작품을 완성했듯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역시 원작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역사적 고증을 충실히 따르며, 당대의 의상 및 소품 등 매우 세세한 영역까지 자신의 예술적 혼을 총 동원하여 제작한 느낌이 아닐 수 없다. 관람 후에도 한동안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던 건 아마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 아닐까? 불멸의 고전이라 칭송 받고 있는 원작 소설을 뛰어난 영상미로 승화시킨, 가히 걸작이라 할 만하다.

 

 

감독  소피 바르트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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