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파더 앤 도터> 사랑과 치유에 관한 따뜻한 영화

새 날 2015. 12. 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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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더만과 전설적인 가수 마이크 볼튼이 리메이크한 '클로즈 투 유'를 틀어놓은 채 딸 바보인 아빠(러셀 크로우)와 어린 딸 케이티가 함께 이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이 영화만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아빠의 끝없는 사랑에 한껏 고무된 듯 케이티의 목소리는 고공비행하며 하늘마저 뚫을 기세다. 너무도 쾌활한 데다 날아갈 듯 가벼운 목소리 덕분에 이를 보는 관객들의 어깨마저 들썩여지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 케이티를 향한 아빠의 사랑은 딸 바보라 칭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치명적인 지병 때문에 몸마저 불편한 처지였지만, 딸 아이에게 쏟는 사랑만큼은 여느 아이들과 견주어 절대로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아빠의 지난한 노력 덕분이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다. 불행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법, 아빠가 지병으로 인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신에게 한없이 사랑을 쏟아부었고 자신 또한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들, 즉 엄마 아빠는 이렇듯 차례로 케이티의 곁을 떠나간다.

 

 

성인이 된 케이티(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상처 받은 영혼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어느덧 사랑마저 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그녀가 지닌 상처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녀가 받았던 엄마 아빠의 사랑의 크기에 정확히 비례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 비집고 들어갈 곳 없는 허기진 그녀의 빈 영혼을 메울 수 있는 건 오로지 낯 선 이들과의 무의미한 섹스뿐, 그러던 어느날이다. 과거 유명 작가였던 자신의 아빠가 집필한 책 ‘파더 앤 도터’를 읽고 그를 존경한다는 카메론(아론 폴)이 우연히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의 적극적인 접근은 둘의 사이를 조금씩 가까워지게 하는데...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엄마의 사랑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케이티는, 엄마와 함께하는 다른 가족의 모습만 봐도 눈물이 핑 돌기 일쑤다. 혼자가 된 아빠의 딸 사랑이 더욱 지극 정성으로 흐르게 된 건 다름아닌 이러한 엄마의 빈 자리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되는 대목이다. 엄마의 부재를 딸 아이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아빠의 노력은 그래서 더욱 눈물겨울 수밖에 없다. 자신을 사랑했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다 보니 케이티에게 있어 어느덧 사랑은 사랑이 아닌, 아픈 상처로만 기억될 뿐이다. 어릴적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물기는커녕 더욱 커져만 가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케이티는 뭇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접근을 마냥 두려워 한다.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덧대는 일이 싫어서다. 때문에 그녀는 늘 혼자다. 자신을 사랑하거나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녀의 곁을 떠나가고 마는 압박감 내지 죄책감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셈이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 아빠의 잇따른 죽음은 케이티에겐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케이티는 자신의 상처를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편이다. 자신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돕겠다며 전공조차 심리학을 선택했고, 타인이 지닌 아픔에 공감하며 이의 치유를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케이티가 지닌 아픔과는 그 양태가 사뭇 다르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아픈 상처로 인해 입을 굳게 다문 채 세상 그 누구와도 소통하기를 꺼려하던 한 소녀가 있었다. 케이티는 그 아이의 심리 치료를 맡으며 세상과 쌓은 벽을 하나 둘 허물어 가던 참이다. 입뿐 아니라 마음의 문마저 굳게 걸어 잠갔던 아이가 케이티의 진정성 있는 관심과 치유 노력 덕분에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은 그래서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건 뮤지컬 영화였던 맘마미아 이후 처음이다. 맘마미아가 2008년도에 나온 작품이니 햇수로 벌써 7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있었다. 당시 청초했던 그녀의 이미지는 점차 원숙한 여인의 그것으로 변모해가는 와중인 듯싶다. 그녀의 나이도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외견상 과거보다 살이 약간은 빠진 듯싶지만, 맘마미아에서 '소피' 배역을 맡아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던 예의 그 환한 미소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녀의 밝은 웃음 속엔 주변 사람들의 기분까지 흥겹게 만드는 무언가 뛰어난 마력이 숨어 있는 듯싶다.

 

 

사랑으로 인해 얻은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또 다시 사랑일까?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다이아몬드 그 자체이듯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사랑이란 비단 남녀 간의 통속적인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엄마 아빠와 자식 간에 이뤄지는 사랑,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등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응당 누군가를 통해 단 한 차례라도 경험했음직한 가장 기본적인 사랑까지, 그 폭은 참으로 넓고도 깊다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사랑이라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기쁨과 슬픔 따위의 감정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아니 단순한 공감만으로도 상대방이 지닌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뿐 아니라, 종국엔 자기 자신의 상처마저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역시 사랑이 지닌 힘 탓이 아닐까? 

 

다소 밋밋한 내용과 예측 가능한 뻔한 전개, 아울러 단순한 이야기 얼개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클로즈 투 유'를 부르던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 글썽이던 성인 케이티는 과연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꽁꽁 싸맨 옷깃을 자꾸만 무장해제시키려 드는 이 차가운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릴 법한 따뜻한 영화다.

 

 

감독  가브리엘 무치노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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