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행정예고 중인 '국정화'에 예산부터 챙긴 꼼수 정부

새 날 2015. 10. 2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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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내용을 담은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했다. 행정절차법 제46조에 따라 행정예고 기간인 20일 동안, 그러니까 11월 2일까지 교육부는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국정화 시행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김재춘 교육부 차관은 같은 날 국정화 전환 브리핑 자리에서 취재진의 "행정예고 기간 동안 국민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 있는지, 또 국민 여론이 크게 벗어날 경우 정책 변화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의견을 수합한 뒤 내용을 판단해서 확정 고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그 결과를 국정화 시행 여부에 반영하겠노라는 의미이다. 즉 원론적으로 볼 때 반대 여론이 심할 경우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체계를 지닌 정부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렇다면 국정화와 관련한 의견 개진은 어떤 방식으로 하면 될까? 이는 아래 이미지를 참고하자.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국민 여론 및 절차를 무시한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행정은 이번에도 빛을 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앞에서도 봤듯 현재 여론 수렴을 위한 행정예고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에 아랑곳없이 국정교과서 편찬 예산부터 챙기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통해 국정 교과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역사교과서 개발비 예산 44억원 전액을 예비비에서 우선 꺼내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 마디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국정화와 관련한 국민들의 의견 수렴은 지극히 형식적이며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도대체 이번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가뜩이나 정치권은 현재 국정 교과서 예산을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는 양상인데, 이러한 결과는 결국 행정부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를 무시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정당한 주권마저 철저하게 깔아뭉개는 처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예비비란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이나 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미리 일정액을 책정하여 두는 금액을 일컫는다. 여기서 '예산 외의 지출'이란 예산 편성 당시 계상하지 않았던 의외의 지출을 의미하며, '예산 초과지출'이란 예산에 계상된 것이지만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당초 책정된 금액보다 초과하여 지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비비란 기본적으로 보충성을 전제로 한다.

 

첨예한 이해 관계 때문에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정부가 필요할 때 일단 사용한 뒤 국회에 사후 보고하는 형태의 예비비를 활용하는, 일종의 우회 전략을 택하고 나온 셈이다. 그러나 국회가 내년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더구나 국정화 시행이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행정예고기간임에도 미리 돈을 쟁여놓은 채 먼저 쓰고 보겠다는 정부의 심산은 결국 국회의 예산심사권을 무시하는 처사인 데다 지극히 편법적인 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더욱 괘씸한 건 결국 정부가 국민 여론 따위에 대해 아예 받아들일 계획이 없노라는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연합뉴스

 

애초 억지 논리와 무리수로부터 시작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젠 절차마저도 그보다 더한 무리수들로 덧칠 되어가고 있다. 행정예고를 통해 국민의 의견수렴을 하는 이유는, 국민의 반대 여론이 비등할 경우 시행 계획을 거둬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올바른 행정이란 국민 주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여론을 받아들여 이를 철저히 정책에 반영함을 의미할 테다. 하지만 아직 행정예고 중에 있는 사안에 대해 벌써부터 해당 예산을 예비비라는 지극히 우회적이면서도 편법적인 방식으로 확보하고 나섰다는 건 작금의 국민 의견 수렴은 지극히 요식적인 절차임을 드러내는 것이자 국정화 시행은 이미 기정사실임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마저도 유린한 채 무리수로 점철된 절차와 과정을 통해 국정화를 강행하여 얻으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제아무리 국정화가 옳은 것이라 해도 이렇듯 절차가 비민주적이며 일방통행식이라면 그 결과에 대한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국정화 강행을 위해 온갖 완력과 심지어 꼼수까지 동원하고 있는 정부와 집권여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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