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캣맘 사건, 언론과 대중들의 행태엔 문제 없나

새 날 2015. 10. 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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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가 초등학생으로 확정되면서 용인 캣맘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섣불리 예측하여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관련 글을 쓰려는 나로서도 사실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객관적인 사실과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벌어져왔던 일들을 복기해 보며 반드시 짚어 봐야 할 점 몇 가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처음 사건이 빚어졌을 때 경찰은 벽돌이 저절로 떨어진 것이라기보다 누군가 고의로 이를 던졌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벽돌에 맞은 이들은 이른바 캣맘이라 불리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었으며, 사건이 있던 그 시각에도 아파트 화단에서 길고양이 집을 만들던 와중이었다. 그러니까 벽돌과 캣맘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순전히 우연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언론은 일제히 추측성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캣맘 혐오 범죄일 것이라 단정짓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때아닌 캣맘 논쟁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캣맘 혐오 범죄는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와 별개로 캣맘에 대한 비난 여론은 거세어가기만 했다. 하루아침에 캣맘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할 증오의 대상이 돼버렸다.

 

사건이 벌어진 날이 8일이었고, 용의자가 특정된 날은 16일이다. 그러니까 대략 10일 가까이에 이르는 기간동안 대중들은 경찰의 수사 결과와 언론의 추측성 기사에 따라 부화뇌동한 채 전혀 엉뚱한 대상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있던 셈이다. 경찰이야 수사 기법상 용의자를 안심시키거나 혼선을 주기 위해 일부러 엉터리 정보를 흘리곤 한다. 그렇다면 언론으로선 경찰의 수사 결과 내지 브리핑을 그대로 옮기는 일만으로도 실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안이 돼야 하거늘, 거기에 한술 더 떠 주변 정황만으로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 셈이다.

 

초등학생, 그것도 만 9세로 형사 처벌 대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아이가 용의자로 특정됐다. 즉 이번 사건이 캣맘 혐오 범죄와는 전혀 무관한 결과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결국 그동안 언론이 무수하게 뿌려놓은 추측성 기사들은 죄다 소설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단순히 여기에서 그쳤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언론의 태도에 놀아나던 대중들은 엉뚱한 곳에 헛심을 쏟았다는 자괴감과 허탈감에 일제히 빠져든 모양새다. 그러나 언론의 무리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으며, 그와 함께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대중들은 새로운 대상을 금세 찾아내고 만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중력 실험을 위해 벽돌을 낙하시켰다고 발표했다. 물론 보편적으로 볼 때 만 9세에 불과한 초등4년생의 입에서 중력 실험이란 용어가 나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요즘 과학 관련 도서들이 시중에 즐비한 터라 꼭 교과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아이라면 그 정도에 대해 전혀 이해 못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또 다시 학교 교과 과정에 해당 사항이 없는데 그런 실험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로 인한 파장은 상당하다. 가뜩이나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자신의 범죄 사실을 감추고 있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미심쩍은 상황에서 이러한 의혹은 캣맘 떡밥처럼 상당한 파괴력을 지닌 탓이다.



경찰에 따르면 아이 부모는 자녀의 범죄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노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는,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부모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즉 부모가 범죄 성립 요건에서 최대한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 아이와 입을 맞춰 훈련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한 상황이다. 중력 실험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경찰이 발표한 사실 그대로 이번 사건을 놓고 보자면, 아이들이 애초부터 사람을 맞추려는 의도보다 중력 테스트 따위의 장난을 치다 빚어진 참극으로 읽힌다.

 

그러나 온라인엔 이미 초등생과 부모를 동시에 저격하는 글들로 넘쳐난다. 심지어 용의자를 일베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그동안의 행적과 핸드폰 기록 따위를 모두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아이들은 나중에 자라 싸이코패스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며 형사상 처벌이 어렵다면 민사상으로 용의자의 가정을 완전히 풍비박산내야 한다는 주장도 엿볼 수 있다. 대중들은 분노의 대상을 단순히 해당 용의자뿐 아니라 어느새 초등학생 전체로 그 범주를 넓혀가고 있었다.

 

캣맘을 향하던 대중들의 분노가 초등학생 용의자로부터 초등학생 전체로까지 번져가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캣맘 혐오 범죄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며 지나칠 정도로 언론에 휘둘려온 대중들의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긴 하다. 그의 일환으로 이번 사건의 초점이 마치 캣맘에 맞춰진 것처럼 인식시키게 할지도 모를 '용인 캣맘 사건'이라는 사건명을 '벽돌 투척 사망 사건'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 다수는 자신들이 표적으로 삼았던 분노의 표출 대상을 캣맘에서 초등학생으로 바꿨을 뿐 또 다시 언론의 보도 행태에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결과를 빚게 만든 우리 언론의 태도가 가장 문제로 지적된다.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책무를 스스로 어기고 있는 데다, 오히려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만 부풀리며 여론의 향배를 특정한 곳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 범죄로부터 기인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면, 반성과 함께 그동안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변화를 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측성 기사를 난무하며 대중들의 이목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중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그동안 마음 한켠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할 대상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기라도 한듯 언론이 의도한 방향에 따라 우루루 몰려가 이를 모두 쏟아내기 바쁘다. 인터넷과 SNS는 이들이 쏟아낸 분노의 글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분노의 대상만 달라졌을 뿐 절대로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아 하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사건의 진실이나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 따위보다 자신들이 안고 있는 분노에 대해 이를 표출할 대상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야 하는 건 특정한 대상을 향한 분노 표출이 아닌,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기 제대로 이뤄져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도록 모든 사실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다시는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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