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소통 절벽 청와대 5자 회동, 이럴 거면 왜 했나

새 날 2015. 10. 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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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절벽 같은 그런 암담함을 느꼈다”

"2년 넘게 우리 국민들이 이 터널 안에서 계속 지내야 되는구나 하는 깜깜함을 느꼈다”

 

22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5자회동에 참석했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의 일성이다. 이 한 마디로 이번 회담의 분위기가 어떠하였는지 충분히 짐작 가능해진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청와대에서 만난 것은 지난 3월에 이어 무려 7개월만의 일이다. 그만큼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의 회동이란 우리 정치 지형상 쉽지 않은 기회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렇듯 귀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도 못한 채 그저 만남 자체에 대한 의의 외에 특별한 성과가 거의 전무한 터라 이번 회동은 그 어느 때보다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일찍부터 예견됐다. 회동 제안 직후부터 5자회동과 3자회동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이 옥신각신하더니 회동이 예정된 당일 오전까지 이번엔 대변인 배석 여부를 놓고 서로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며 투닥거린 탓이다. 결국 국정화에 대한 의제 선정 외에 두 사안 모두 야당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청와대가 제시한 안 대로 이뤄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회동 시작 전부터 벌어진 신경전에서 청와대는 일찌감치 기선 제압에 성공한 셈이다. 

 

ⓒ청와대

 

회동이 이렇듯 평행선을 달린 배경엔 최근 우리 사회를 극심한 이념 갈등과 역사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자리잡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이 자리에서 국정화를 중단하고 경제와 민생을 돌봐줄 것을 박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국정교과서는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데다 국민 여론도 획일적인 역사교육에 반대하고 있다며 국정화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교과서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러한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며 국정화 철회 의사가 전혀 없음을 공식화하고 사회 전반에서 일고 있는 국정화 반대 여론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여기서 박 대통령이 드러낸 안타까움이란, 오로지 자신이 밀어붙이고 있는 국정화가 반대 여론에 강하게 부딪히고 있는 데 따른 하소연으로 읽히며, 국정화가 정치적 문제로 불거지게 된 건 순전히 교과서 발행체제의 전환을 일방적으로 바꾸겠다고 나선 데 따른 작용 반작용 현상에 다름아니다. 결국 모든 원인은 박 대통령 스스로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유체이탈 화법을 꺼내든 셈이다.



우리가 바랐던 회동은 외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절대로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국정화에 대한 신념이 강하고 이를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에 추호의 변함이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대통령 스스로가 마련한 회동 자리에서 만큼은 야당이 주장하고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경청하고 검토해 보겠다는 제스처 정도는 취했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독단적이며 소통 절벽의 정치로 과연 얼기설기 얽혀 있는 심각한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방도가 없다. 사회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국정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 학계 등 사회 전반에선 국정화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추세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최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정화에 반대하는 의견이 52.7%로 찬성 41.7%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가 의미있게 다가오는 건 1주일 전 조사와 견주어볼 때 거의 모든 계층과 지역에서 반대 의견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뤄진 여야회동인 데다, 국민 여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귀 담아 듣는 대통령이라면 이렇듯 경색된 방식으로 현안을 매듭짓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실은 회담의 형태도 문제 투성이다. 이번 회동을 대변인 배석 없는 철저한 비공개로 한 것이나 야당 대표의 모두 발언 없이 진행됐다는 자체만으로도 애초부터 대통령의 소통 의지가 없음을 내비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담에서 오고 간 내용이 있는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해석된다는 언론의 자체 분석은 괜한 게 아니다. 우린 학창시절 정치란 갈등과 다툼을 조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배운 바 있다. 게다가 민주정치의 원칙은 대화와 타협이 근간을 이룬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번 회동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 그리고 '민주적 절차' 따위는 도무지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 어디론가 감쪽 같이 실종된 탓이다. 오늘자 언론사들의 사설 제목이 우리의 정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번 회동은 올해로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정부가 연말까지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야당의 협조를 구해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두려던 구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상호간 입장차만 확인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종결되었기에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있어 적잖은 난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피해로 전가될 공산이 크다. 더욱 갑갑한 건 실종된 정치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해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대내외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모하며 점차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도 이는 더없이 치명적으로 다가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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