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절차상 문제점은 없나

새 날 2015. 10. 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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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에 대한 국정화 전환을 끝내 강행했다. 교육부는 12일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한다고 확정했다. 이로써 지난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교육현장에서 역사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언급을 기점으로 근 2년 여만에 중고등학교 한국사 발행체제의 전면 변화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정부의 결정이 확정되자 야당은 거리투쟁을 선언하며 거리로 나섰고,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각종 시위를 벌이는 등 거세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이 불을 뿜으며 전면전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은 올바른 교과서 발행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까지 하며 스스로를 치켜세우고 난리법석인데 도대체 왜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역사 교과서 정상화의 첫걸음이라 주장하는 세력과 국정 역사 교과서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편향적인 교육을 강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현재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러한 내용의 언급에 대해선 배제하기로 하자. 그보다는 이념 논쟁과 역사적 갈등을 야기할 만큼 중요한 사안인 교과서 발행체제에 대해 왜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빠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과 그의 연장선에 놓인 사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국정화 전환 과정에서의 절차상 문제점은 없었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경향신문

 

우리 사회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한 차례 겪은 바 있다. 이후 대통령의 역사 왜곡 언급이 이어졌고, 지난해 2월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교육부는 공론화를 통해 국정체제 전환을 포함한 교과서 체제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국사 교과서 발행체제에 관한 토론회가 두 차례 열린 것으로 확인되었고, 여론조사도 한 차례 시행됐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는 모두 지난해에 이뤄진 결과물일 뿐이고, 그나마 올해는 단 한 차례의 공청회나 토론회, 여론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던 와중 새누리당과 정부는 올 10월 들어서며 뜬금없이 국정화 관련 사안을 도마 위에 올려 군불을 지피더니 여론전에 나섰고, 결국 급작스레 국정화를 단행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한 새누리당의 공식 당정회의는 발표를 하루 앞둔 11일이 되어서야 이뤄져, 결국 국정화 방침을 이미 결정지은 상황에서 그동안의 절차들은 모두 요식 행위에 불과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 한 차례 실시했던 정부 주도의 여론조사 결과는 정부 방침에 우호적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했던 여론조사 결과 찬반 의견이 팽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체적으로는 교사의 56.2%는 검정제도를 찬성하였고, 학부모의 56.1%, 일반인의 52.4%는 국정제도를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대로 된 공론화 절차 없이 국정화를 그대로 밀어붙인 셈이다.

 

이런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절차상으로 보나 실질적으로 보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가능케 하고, 또한 정부가 그러한 국민의 여론을 받아들여 이를 존중해주며 정책을 그에 맞게 시행하거나, 다수뿐만 아니라 소수의 의견도 수용하면서 여러 형태의 이익집단이 어우러진 채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실질적인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 텐데, 즉 민주주의적 개념에 걸맞는 절차가 제대로 갖춰져야 할 텐데,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로 이르는 절차와 결정은 크게 미흡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에 대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시민과 야당의 자발적인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물이자 또 다른 민주주의의 실현 양태라 할 만하다.

 

ⓒ뉴시스

 

한편 국정으로 편찬된 역사 교과서는 2017학년도에 첫선을 보이며 중학생은 역사, 고등학생은 한국사 교과서를 단일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2016년도 말까지 제작을 완료하고 2017년 1, 2월에 발행공고를 마치게 되는데, 국정화를 결정했던 과정과 마찬가지로 남은 시간이 촉박하기 그지없다. 공교롭게도 2017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탄생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다. 국정화된 교과서의 발행이 이때부터 이뤄지게 된 사실이 난 그저 우연이길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답답한 건 이번 국정화의 배경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란 보도가 이미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국가 전체를 혼돈속으로 몰아넣을 만큼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일절 언급조차 없이 아랫사람들로 하여금 발표하도록 시켜놓고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책임함의 극치다.

 

아울러 이번 국정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핵심인사들이 과거엔 다양성을 떠난 소수 저자의 독단을 우려하고 국사가 획일화되는 것에 반대했던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에 와선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며 이번 국정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셈이니, 국정화 결정의 명분이나 과정상 절차가 얼마나 허투루이며 문제 투성이인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전광석화와 같이 교과서 발행체제를 바꿔놓은 채 2017년까지 제대로된 교과서를 내놓는다는 발상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의 절차도 급박했지만 교과서 발행 시점까지 남은 기간으로 놓고 볼 때 결국 졸속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이는 교육 주체인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끼칠 것이 분명하다. 교과서 내용의 편향성과 편파성 논란을 떠나 왜 국민들이 이토록 국정화 결정에 반대하고 반발하고 있는지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박 대통령은 곰곰이 헤아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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