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간성 마비 시대, 마음속 장애를 앓는 사람들

새 날 2015. 10. 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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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 주변에서 발생한 몇몇의 사건은 비록 개인의 일탈에 의하거나 우발적으로 빚어진 결과로 치부하더라도 사회의 각박함과 메마른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싶어 무척 곤혹스럽다. 지난달 23일엔 대구 모 모텔 앞에 앉아있던 사람을 자신의 SUV 차량으로 치고, 이를 확인한 뒤에도 다친 사람을 그대로 방치한 채 태연하게 다른 모텔로 향한 한 커플이 대중들의 분노를 야기한 바 있다. 그들은 도망쳤다가 결국 일주일 뒤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번 사건이 그저 단순한 뺑소니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당시 운전을 한 남성 곁에는 연인 사이인 20대 여성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일단 차를 다른 곳에 세운 뒤 사건 현장으로 돌아와 치인 사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물론 내가 그런 상황과 맞닥뜨렸다면 당장 사고 현장에서 내려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 판단되는 터라 이들 커플의 행동은 이미 이 지점부터 어긋나있음을 짐작케 한다) 차에 치인 사람은 그들에게 구조해달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이들 커플은 그에 아랑곳없이 현장을 벗어나 길 위에서 버젓이 애정 행각을 벌인 뒤 잠시후 태연하게 다른 모텔로 향했단다.

 

나를 경악케 하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쳐도, 대학생 신분이라는 두 젊은이가 자신들의 차에 치인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어떻게 이를 모른 체하고 그 앞에서 애정 행각까지 벌일 수가 있었던 걸까? 홛당하기 짝이 없다. 이쯤되면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두 사람이 모여 있는 상황이라면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어쨌든 단체에 해당할 테다. 그렇다면 설사 한 사람이 그런 몹쓸 생각을 지니고 있더라도 단체의 일원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그러한 행동을 만류하고 우선 다친 사람을 위한 구호 활동에 나서는 게 정상적인 상황 아닐까?

 

곤란한 일을 겪거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경우 그를 돕고 싶어지는 건 사람의 보편적 정서다. 이른바 측은지심이다. 하물며 현재 곤란을 겪고 있는 이가 자신들에 의해 다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제아무리 연인 사이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급하고 정신이 팔린 상황이라 해도 어떻게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의 행동이 동시에 제대로 된 판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다. 이쯤되면 싸이코패스도 울고 갈 정도의 막가파식 행동 아닌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건은 또 있다. 아파트 화단에 길고양이를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던 여성들이 아파트 고층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벽돌에 의해 한 사람은 목숨을 잃고 또 다른 사람은 부상을 입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현재 수사기관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기에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나 짐작컨대 평소 길고양이를 도와주던 행동에 대해 못마땅해 하던 아파트 주민이나 외부인 중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게 아닐까 싶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논란 및 분쟁은 현재 전국 각지의 주거지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져오는 뜨거운 감자에 해당한다.

 

 

국제표준에 따르면 중력가속도는 9.80665 m/s2다. 이는 자유낙하하는 물체가 1초 지날 때마다 변화하는 속도의 변화량을 의미하며, 모든 물체는 위치에 따라 위치에너지를 갖기 마련이다. 높은 곳에 위치할 수록 위치에너지는 커지며 이는 질량에 비례한다. 즉 벽돌 하나가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질 경우 그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사안일 테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누군가 살의를 지니고 행한 일로 봐도 전혀 무방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건 심각한 병리 현상으로 보인다. 이는 겉으로만 멀쩡할 뿐 속으로는 골병 든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이와 관련하여 외국의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건강과 재산을 모두 잃은 불행한 처지에 놓여있으면서도 다른 이의 곤경을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나치지 않은 한 남성이 해외에서 화제다. 감동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다. 그런데 사실 화제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감동을 줄 만한 사안은 더더욱 아닌 걸로 보여진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사례가 화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건 어쩌면 사회가 그만큼 각박해져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튜브에 사회적 실험 동영상을 제작 운영하는 이들이 한 실험에 돌입한다. 낡은 자동차 한 대를 도로변에 세워 놓고 뒷바퀴를 떼어낸 채 스페어 타이어를 장착시키는 일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미션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런 그를 돕기 위해 멈춰 서는 차량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2시간이 넘도록 기다린 뒤에야 마침내 다가온 사람은 에릭이라 불리는 남성이다. 하지만 그의 몸은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화재로 전신에 54%의 화상을 입어 현재는 신체 곳곳에 고통이 지속되는 탓에 계속 진통제를 복용해야 하며 오랫동안 서 있을 수도 없어 때때로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왜 도움을 주게 되었느냐는 실험 운영자의 질문에 누구든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기 마련이라는 에릭의 대답은 일견 지극히 평범한 답변인 듯싶지만 실상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이와 같은 행위 및 답변조자 좀처럼 구하기가 쉽지 않은 터라 씁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문제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들은 도움 주기를 철저히 꺼려하는 상황이고, 반대로 자신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남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나서게 된 이는 되레 중증 장애인이었던 셈이다.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우린 이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섣불리 제3자의 일을 거든다며 나섰다가 되레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터라 다른 사람이 곤란을 겪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의심부터 하며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보다 솔직한 현실이긴 하다. 당장 나부터도 그렇다. 때문에 작금의 실험 결과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평소 측은지심을 느끼고는 있지만 이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불신 가득한 작금의 사회 현실이 되레 진짜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에릭의 행동은 정말로 칭찬 받을 만하다.

 

몸은 비록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어려움에 대해 이를 외면하지 않은 채 기꺼이 그를 돕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겉은 멀쩡하면서도 속은 엉망인, 병리 현상을 겪는 이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도 개탄스럽다. 지극히 사사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채 정작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조차 흐려지게 만들거나 심지어 인간성 자체가 아예 마비되는 현상마저 쉽게 접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혹은 단순히 꼴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에게 위해를 가해 종국엔 목숨까지 잃게 만드는, 무지와 만용이 판을 치는 사회를 바라보며 이러한 몹쓸 분위기가 자꾸만 전파될까 봐 몹시 두렵기까지 하다. 메마르고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며 누구나 마음속에 병(病) 하나씩 들여놓은 채 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을 현대인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진짜로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은 과연 어떤 부류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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