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안철수 '낡은 진보 청산', 왜 하필 지금인가

새 날 2015. 10. 1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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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낡은 진보 청산을 요구했다. 그는 당내 배타적 패권적 문화가 가득 차 있고 운동권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낡은 진보 청산을 위한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극복 등의 내용이 담긴 4대 기조를 제시했다. 아울러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 등의 5가지 실행방안을 통해 부패한 보수는 살아남아도 부패한 진보는 용서받기 어려우며, 부패에 대한 불감증과 저급한 막말정치에 대한 특단의 대책과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의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달 20일 당 부패척결 방안에 이은 혁신 시리즈 2탄에 해당한다. 당 대표를 역임한 바 있고, 한때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힐 정도로 명망과 대중적 지지세를 얻고 있는 그이기에 사견을 전제로 했든 아니면 특정 계파의 의견을 담아냈든 얼마든 자신의 의견을 대중 앞에서 피력할 수는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왜 발표 시점이 하필 지금이어야 했는가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뉴시스

 

안철수 의원이 기자회견을 한 11일은 문재인 대표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골자로 한 청년경제 구상을 발표한 날이자 정부가 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를 국정화로 확정짓고 12일 오후 2시에 이를 발표하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당의 정책을 발표하는 중요한 시기에, 아니 그보다 비등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를 막기 위해 온 당력을 집중시키고 모든 화력을 끌어모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뜬금없는 기자회견이라니, 안 의원이 과연 제대로 된 정치 감각을 지닌 인물인 건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제시한 방안이 제아무리 좋고 옳은 방향이라 해도 적어도 때와 장소는 가려가며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물론 그의 주장이 결코 잘못됐다고는 볼 수 없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옳은 말들이기 때문이다. 야당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구시대적 문화가 남아있다면 응당 이를 청산해야 할 테고, 누군가는 앞에 나서서 이러한 역할에 총대를 매야 하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일 테다. 문재인 대표가 직접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안 의원 같은 사람이 그 역할을 도맡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지금은 분명 아니다. 아울러 무당파와 중도 세력을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을 위해 무작정 기존의 정치를 부정하고 대중들로 하여금 정치 혐오를 키우는 방식 또한 전혀 옳지 못하다. 말만 앞서고 실체는 존재하지 않던 과거 '새정치'라는 모호함의 전철을 되밟지 않기를 바라는 충정어린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물론 이런 글을 쓰는 나로서도 참으로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면 가뜩이나 야당이 내홍을 겪으며 대중들로부터 존재감이 갈수록 옅어져가는 판국에 힘을 보태주기는커녕 이런 글로 인해 오히려 분란을 더욱 부추기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을 거스르려 하는 정부의 일방적 독주를 저지하는 데에 미약하나마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싶어 감히 글을 남긴다.

 

단언컨대 지금은 18대 대선에 대해 서로를 겨눈 채 책임을 물을 시기가 아니다. 당 혁신위를 질타하는 행위나 낡은 진보의 청산 역시 잠시 뒤로 미루시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복하자고 제안했지만, 말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정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극복하는 첩경은 되레 그분들의 정신을 담아내는 일이 되어야 할 테니 말이다. 지금은 지리멸렬했던 당력을 한데 모아야 한다. 계파에 의해 이합집산됐던 어수선함을 봉합시키고 전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할 때다. 사심이 들어가 있든 혹은 진짜로 당의 발전을 꾀했건 간에 모두를 흩어지게 했던 당의 내분을 수습하고 진짜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할 시기이다.

 

작금의 상황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보자면 어쩌면 지리멸렬하기만 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호기를 잡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안철수 의원은 이 시점에서 당의 힘을 분산시켜선 절대로 안 되며, 이를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 의원이 제시한 비전과 구상이 비로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테며, 그러다 보면 낡은 진보 역시 절로 꼬리를 감추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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