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개혁'에 앞서 국민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새 날 2015. 8. 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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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여러분'으로 시작하여 '감사합니다'로 끝을 맺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8월 6일 대국민담화엔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함으로 가득하다.  그동안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대국민담화가 이뤄졌지만, 앞서의 경우와 달리 이번엔 그 색채가 확연히 달랐다.  국민의 협조와 협력이 절실함을 절박한 심정으로 간곡하게 부탁하거나, 정부 추진 개혁이 온 국민과 후손들의 미래가 달린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나라와 개인 그리고 가족의 미래를 위해 국민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개혁의 길은 국민 여러분에게 힘든 길이 될 수도 있다'는 대통령의 표현은 그동안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화법이다.  이로부터는 자못 비장함마저 묻어나오는 탓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고통을 감내하고 기꺼이 희생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이른바 고통 분담을 읍소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노동시장 개혁 등 이른바 '4대 개혁'에 대해 얼마나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우선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대해선 나 역시 지극히 공감하는 바다.  아울러 그에 대한 적절하고도 긴급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인식을 함께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놓여 있고, 가뜩이나 낮은 성장률임에도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떨어지며 저성장의 굴레에 빠진 채 악순환이 고착화될 우려가 있는 반면, 세계 경제는 금융위기 이래 급속히 재편되어 치열한 생존경쟁 속으로 내몰리고 있는 탓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분수령이 앞으로 3-4년 내에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결코 과장되었다거나 틀린 분석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도 강조하고 있듯 이번 담화는 일종의 국민에게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국민들에게 고통 감내와 희생을 부탁하는 어려운 자리였음이 분명하거늘, 그렇다면 대통령부터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과거의 행태와는 일정 부분 선을 긋는, 무언가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기자들의 질의 응답과 같은 지극히 뻔한 소통조차 일절 없이 과거의 방식 그대로 답습한 채 일방적으로 읽어내려가는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청와대

 

대통령이 언급하고 있는 개혁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그릇된 방향인지의 가치판단 따위의 사안에 대해선 여기선 일단 접어 두기로 하자.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그러한 명제를 떠나 대통령의 대국민 호소와 부탁이 과연 대통령의 절박함만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채 올바르게 받아들여졌느냐 하는 점일 테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대국민담화라는 요식 행위 자체마저 참 부질없는 행위이자 오히려 국민을 겁박하는 모습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일 테니 말이다. 

 

대통령은 그동안 신뢰와 원칙을 누누이 강조해 오면서도 오히려 공약 파기 등 국민과의 약속 저버리기를 밥먹듯 해 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변명과 불통으로 일관해 오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내놓는 정책마다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을 촉발시키거나 각종 재난 상황에서 보여 준 무능함과 무책임함은 도저히 그 끝을 모를 곳까지 치달은 바 있고, 온갖 정치적 구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채 현재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늘 스스로의 부족함과 부덕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그저 남 탓만을 일삼는 전형적인 유체이탈화법의 대가였다.  이렇듯 꼿꼿하기 짝이 없는 일방통행식 행정부 수반의 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 혐오와 정부 불신 및 거부감만을 더욱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연합뉴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라 일컫는 오로지 특정 정당과 지역 지지자들의 묻지마 지지세에 의해 힘겹게 유지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양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로 조사됐다.  이는 국민 10명 중 7명 가량이 정부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개발도상국인 인도네시아,  터키, 에스토니아 그리고 브라질 등보다 낮은 순위다.  우리 정부의 신뢰 수준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다.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4대 개혁'은 스스로의 언급처럼 정부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니 국민의 협조 없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정책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국정의 중심은 국민이고 혁신과 개혁의 동력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통령의 언급은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적절하며 옳은 표현이다.  하지만 국민의 권리를 인정해 줄 때엔 인색하기 짝이 없거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해 오던 정부가, 의무를 언급할 때에만 이렇듯 뭐든 국민이 최고인 양 번지르르 떠받드는 표현을 빌려 온 걸 보아 하니 그야말로 코웃음 칠 일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개혁 정책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운명이 달린 사안이 분명 맞다면, 작금의 고통 분담과 같은 일방적인 읍소 형태가 아닌, 정부의 신뢰를 먼저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 아닐까?  즉 대통령의 '개혁하자'라는 호소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려면 신뢰 회복을 전제로 한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1순위에 놓여야 하는 게 아니냔 말이다.  이는 열심히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새누리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가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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