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119 장난전화의 기회비용과 시민의식

새 날 2015. 8. 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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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전화에 출동했다가 소방관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일 영국에서의 일이다.  영국 데일리스타와 BBC방송에 따르면 폴 키너라는 소방관이 화재구조 긴급호출을 받고 자신의 차를 몰아 현장에 가던 중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했단다.  관련 당국의 조사결과 해당 신고는 어이없게도 장난전화로 밝혀졌으며, 특히 그는 아내와 올해 3살 및 17개월 된 어린 두 아들을 둔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었던 터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누군가의 장난전화 한 통이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을 초래한 셈이다.  이로 인한 유무형의 피해는 이루 형언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크다.  작은 장난으로부터 비롯된 파장은 진폭을 더욱 키워가며 흡사 나비효과와 같이 일파만파 확산돼 가기 일쑤인 탓이다.  우선 단란했던 한 가정이 풍비박산난 대목이 가장 가슴 아프다.  이의 결과가 차후 그의 아내와 두 자녀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세계일보

 

장난전화에 따른 엉터리 화재 현장에 투입되는 바람에 같은 시각, 자칫 더욱 긴급한 사안에 대해 그가 제대로 대응할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에 하나 대형 화재나 기타 위급한 사고에 의해 수많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이렇듯 장난전화 한 통화로 인해 엉뚱한 사건에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경우 그 결과는 지극히 치명적일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존재다.  때문에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그를 사망에 이르게 만든 책임은 그 어떤 귀책 사유보다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어떤 일이든 동시에 처리할 수 없는 이상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면 다른 대안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이른바 기회비용이다.  결국 선택된 하나의 비용은 포기한 다른 것에 대한 기회이자 이러한 선택의 비용을 포기한 다른 선택에 대한 가치이다.  숨진 소방관이 장난전화에 의한 출동을 선택했을 경우, 이의 기회비용은 그의 죽음에 따르는 유무형의 직접적인 비용과 그로 인해 포기한 여타의 긴급 현장에서 발생했을지도 모를 인명 피해 내지 금전적 손실들의 총합이 될 테다.  이렇듯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고, 이는 기회비용이란 형태로 측정 가능하다.  결국 장난전화 한 통화로부터 촉발된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우리의 상상 범주를 훌쩍 넘어선다. 

 

화재·구조나 구급현장에서 흔히 언급되는 용어 하나가 있다.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수차례의 재난 상황을 몸소 겪으며 근래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인명 및 재산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 5분 이내인데, 이는 그 안에 도착하는 시간을 일컫는다.  이렇듯 긴급을 요하는 현장에서의 순간적인 선택은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중요하며,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은 실로 엄청나다.  때문에 철없는 장난전화 한 통은 마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 마냥 그 여파가 혹독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례는 비록 영국에서 빚어진 사건이지만, 사실 우리라고 하여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역시 지난 5년간 8만 여건, 그리고 지난해에만 1만 7917건의 허위 장난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올바른 신고 중에는 단순 불편사항을 요청하는 경우가 상당수 포함된 탓에 정작 위급한 상황의 출동이 있을 경우 골든타임 시간 안에 현장도착이 늦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례로 문을 열어 주기 위해 출동한 횟수가 3만 7천 여건에 이르러 15분에 한 번 꼴로 잠긴 문을 열어 준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전체 출동 건수의 8%에 이를 정도로 잦은 편이다.  화재 출동이 11%이고, 교통사고가 10%의 비중이라고 하니 얼마나 허튼 곳에 역량을 낭비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노후된 소방장비와 열악한 작업 환경 그리고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라는 일종의 직업병 탓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소방대원들이거늘, 장난전화나 허위신고 따위로 고통을 배가시켜서야 되갰는가 싶다.  소방차가 지나가도 길을 비켜주지 않을 만큼 우리의 얕은 시민의식은 이러한 몹쓸 행태로 인해 소방대원들의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더욱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소방기본법 제56조 제1항에 따르면 화재 또는 구조 구급이 필요한 상황을 거짓으로 알린 사람은 과태료 200만원 이하의 처분을 받게 된다.  그나마도 지난 5년간 과태료를 물린 경우는 고작 35건에 불과하단다.  물론 비단 이러한 법적 처벌 때문에 허위신고나 장난전화 따위의 근절을 강조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앞에서도 살펴봤듯 얕은 시민의식에 의해 발현되는 해당 법 위반으로 인한 기회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처벌만이 능사가 아닌,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자발적인 발휘만이 이러한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는 첩경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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