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아내의 드립과 변화는 무죄

새 날 2015. 7. 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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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오이 한 개 사기 위해 동네 마트에 갈 때조차 늘 함께하곤 하는 우리 부부다.  하물며 나의 머리 손질을 위한 미용실 출입이라고 하여 다를까.  물론 순전히 아내가 원하는 스타일 유지를 위함이다.  이러한 일들, 남들이 볼 땐 닭살 커플로 비칠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무척 자연스럽다.  머리를 손질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무척 짧은 스타일이었던 머리가 어느덧 너저분해 보이기 시작한다.  대충이라도 다듬어야 할 듯싶다.  나이가 들며 세포분열이 더뎌지고 머리숱도 확연히 줄었건만,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 느낌이다. 

 

항상 이용하던 미용실에 들렀다.  주인 아주머니가 반긴다.  특별한 요구 없이 먼저번 스타일을 유지해달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미용실 스타일리스트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아무 말 없이 머리 손질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곳 주인처럼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다분히 의도적인 이야기나 질문을 통해 대화를 이어가려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사람이기에 어떨 땐 지극히 뻔한 형태의 대화를 걸어 와 이에 응답하는 일이 귀찮을 때가 있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머리만 손질하는 사람이 야속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참 간사한 게 사람이긴 한가 보다.

 

내 머리를 손질한 아주머니는 성격이 무척이나 솔직담백한 편이다.  그날도 우리 부부에게 있는 말 없는 말 꾸밈 없이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바빴다.  얼마 전 했던 말을 또 다시 꺼내든다.  그런데 살짝 업그레이드가 되긴 한 것 같다.  늘 붙어다니는 우리 부부더러 '부적절한 관계' 아닌가 하며 의심했더라는, 어찌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리 썩 나쁘지만은 않은 그러한 내용이었다.  업그레이드된 부분은 예전엔 '불륜'이 의심된다 였는데, 그새 용어가 '부적절한 관계'로 바뀐 점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그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아주머니의 의식을 바꿀 만한 무언가가 있기라도 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얼마 전 있었던 간통죄 위헌 판결의 여파가 아주머니에게까지 미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아내가 한 술 더 뜬다.  "하긴 제가 너무 심하게 동안이니 그런 오해를 살 만도 하네요"  난 순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늘 다른 이들을 배려해 온 고운(?) 성품의 아내가 어떻게 저런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물론 농담이란 건 안다.  가끔 내게 장난 삼아 해 오던 소리였으니 말이다.  아주머니의 대화에 맞장구 쳐 주기 위해 나름의 신공이랍시고 어설픈 드립력을 과시한 셈이다.  순간 미용실 안은 웃음 천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무감각한 데다 눈썰미 없기로 소문난 나이지만, 이번 미용실에서의 드립이 최근 아내로부터 느껴지던 무언가의 변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내의 저녁식사 하는 모습을 당최 볼 수가 없다.  심지어 아침식사까지 굶는 듯했다.  이게 무슨 변고인가 모르겠다.  헬스장에 가면 제일 먼저 체중계에 올라 체중부터 확인하고, 운동 마친 뒤 또 다시 체중을 체크하던 아내다.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목표치에 도달했어"  물론 난 무심코 흘려 듣고 말았는데, 미용실에서의 드립이 이와 엮이는 순간이다.

 

생전 옷 따위에 관심 없고, 그저 있던 옷 주섬주섬 입어 오기 바빴던 아내인데, 얼마 전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더니 내게 보여주며 이 옷 자기에게 어울릴 것 같냐고 묻는 게 아닌가.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더니 그 옷은 다음날 바로 배송된 채 아내에게 안겼다.  치마였다.  매일 바지와 운동화 차림이던 아내가 치마에 이젠 샌들까지 제대로 갖춰 입고 다닌다.  사실 상당히 커다란 변화인데, 미련곰탱이 같은 난 미용실에서의 '최강 동안' 드립이 있을 때까지 그냥 무덤덤하기만 했다. 

 

아내가 변했다.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살도 꽤 빠진 듯싶다.  엄청난 동안이란 자뻑이 결코 헛된 망상만은 아닌 듯싶다.  아이 둘 키우며 육아와 교육 그리고 집안일에 매몰된 채 자아를 잃었던 그녀, 느는 건 뱃살과 흰 머리카락 그리고 나이 아니었던가.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기가 무척 버겁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는가 보다.  비슷한 경험을 이미 겪었던 나이기에 아내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여자이기보다 아내, 며느리 그리고 엄마의 역할에 충실해 온 그간의 삶, 비록 자칭 동안이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여 자신의 지나온 삶을 위안 받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때문에 아내의 드립과 변화는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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