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내리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새 날 2015. 6. 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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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해 봐도 난 아이들에게 참 인색하고 못된 아빠다.  특히 아이들이 커갈수록 인색함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듯싶다.  머리 굵어진 아이들, 말을 듣지 않은 채 자기 멋대로 행동할 때가 부지기수라 솔직히 꼴 보기 싫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나와는 많이 다른 듯싶다.  당신들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이 예쁜 모양이다.  조부모의 손주 사랑이야 누군들 마찬가지겠지만, 늘 곁에서 지켜보는 내겐 우리 부모님의 손주 사랑은 유달리 커 보인다.

 

최근 큰 아들 녀석이 애지중지 해오던 태블릿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는가 보다.  경찰에 신고하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찾을 리가 만무했다.  난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 못한 결과라며 녀석 핀잔에 바빴다.  그러나 의기소침해 있을 손주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아버님은 쓸 데 없는 일로 신경 쓰면 다른 일도 그르치게 된다며 대뜸 당신께서 사 줄 테니 당장 나가자고 하신다.  물론 난 안 된다며 극구 만류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나올 경우 아이들의 버릇이 나빠지는 데다 이참에 물건의 가치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주어야 할 테니 그냥 두라고 했다.


그런데 실은 우리 아버님의 이러한 모습, 평소대로라면 가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행동이다.  어릴적 아버님은 지금의 나처럼 자식들에게 더 없이 인색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데다 늘 무섭게 다가온 터라 사실 아버님께 말 붙이는 일조차 가슴 졸이며 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술을 유독 좋아하셨기에 술이 거나해야 가끔 손에 무엇을 사들고 오시곤 했으며 평소엔 전혀 말씀이 없으시다가도 술에 취하기만 하면 자식들을 앞에 앉혀놓은 채 과거 위주의 일장 연설을 풀어놓곤 하시던 아버지다.  지금이야 아버님의 입장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릴적 그런 아버님의 모습이 난 너무도 싫었다. 



하지만 최근 아버님의 변화는 너무도 놀랍다.  둘째 아들 녀석이 얼마전 수련회를 간다며 집을 나서려던 찰나, 미리 준비했다며 몇 만원이나 되는 용돈을 덥썩 건네주시던 아버님이다.  당신께서 자발적으로 용돈을 건네 준다는 건 과거에 비춰볼 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인데다, 더구나 미리 준비하셨다는 말씀에선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어머님의 손주 사랑이야 일상 속에서 워낙 보편적이고 넓은 범주에서 이뤄지고 있는 탓에 딱히 언급할 만한 사안이 아니지만, 아버님의 변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조부모들의 손주 사랑은 왜 남다른 걸까?  아마도 자식을 키울 당시엔 막상 힘들거나 삶에 치여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지 못한 탓에 차마 제대로 쏟아붓지 못했던 사랑이었거늘, 이런 식으로라도 표현하여 못다한 사랑을 완성하고 싶은 속내에서 발현된 행동이 아닐까 싶다.  미처 다 맞추지 못한 퍼즐의 남은 한 조각까지 모두 완성하겠노라는 속내 따위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후회하기 전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쏟아야 할 텐데, 왠지 갈수록 관계가 서먹해지고 틀어지는 듯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울러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은 뒤 '잘 해야 해'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가끔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게 할 정도로 뺀질거리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금 못된 아빠로 돌아가기 일쑤다.

 

결국 나 역시 한 세대가 지나고 아이들이 자식을 낳을 즈음, 녀석들에게 다하지 못했던 사랑을 후회하고 우리 부모님이 그러했듯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손주 녀석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붓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자식에게 쏟을 수 있는 사랑의 물리적인 양과 시간은 여러 이유 탓에 점차 짧아져간다.  마지막 남은 퍼즐 한 조각까지 모두 맞추기 위한 노력, 이런 게 바로 내리사랑이라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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