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휴가 시즌이긴 한가 보다. 거의 매일 같이 억지 땀을 빼왔던 헬스장도 이번주엔 문을 닫는단다. 오로지 건강하게 살자라는 모토 하나만으로 근근이 버텨 온 데다, 실은 죽어라 하기 싫은 운동인지라 평소에도 헬스장이 쉬는 날이면 왠지 휴가를 얻은 기분이었던 참이다. 그런데 무려 일주일을 쉰다고 하니 세상에 이보다 반가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싶다. 어찌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한 노릇이지만, 어쨌든 솔직한 내 심정은 그러했다.
지난 포스팅에서 이번 여름휴가 때 난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고 했던 적이 있다. 난 누군가(?)와 같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냥 집에서 쉬고 있자니 청승맞기도 하고, 참 의미없는 짓 같아 마눌님과 몇가지 흥미로운 계획을 짜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게 될 경우 어차피 기십만원은 기본으로 써야 할 테니, 그 중 일부만이라도 투자하여 휴가 기분을 아주 조금 만끽해 보자는 그런 취지에서였다. 실은 전형적인 잉여짓이었지만 말이다.
이번 포스팅에선 그 중에서도 가장 하찮고 제일 시시했던 미션 하나를 공개할까 한다. 평소 '슈퍼100'이나 '요플레'라 일컫는 이른바 떠먹는 요거트를 먹어 오면서 늘 느껴 왔던 그 감질남에 대해 난 사실 심각할 정도로 고민해 왔던 터다. 왜 우린 항상 이를 티스푼으로 몇 차례 떠먹고 끝내야 하는지, 그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던 탓이다.
80그램짜리 떠먹는 요거트가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를 먹는 일만으로도 감지덕지하더니, 언젠가부터는 티스푼으로 떠먹는 아주 적은 양이 내겐 심히 못마땅하게 다가왔다. 난 슈퍼100 류를 먹을 때면 늘 허기를 느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냥 큰 수저로 푹푹 떠먹을 만큼 큰 용량은 왜 없는 걸까 라는 불만 아닌 불만을 늘 안고 살았다. 몇 숟가락 채 뜨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바닥을 드러내 보이기 일쑤인 요거트는 내겐 너무 야속하게 와닿았던 탓이다.
이번 미션의 시발은 다름아닌 이러한 발상으로부터 비롯됐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했던가. 난 동네 마트에 들러 요거트가 진열된 냉장 코너로 향했다. 매우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로 즐비했다. 물론 예의 그 80그램짜리 녀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말이다. 난 큰 용기에 든 녀석을 찾느라 눈을 이리저리 굴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한 녀석이 눈에 띄었다. 언뜻 보기에도 한 번에 다 먹기엔 부담스러울 만큼 커 보이는 제품이다. 용량을 확인했다. 400그램이다. 뭐 이쯤이야. 어쨌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왜냐면 큰 용량으로 한정 짓다 보니 이 녀석 말고는 플레인이라 하여 일종의 드레싱처럼 음식에 뿌려먹거나 스스로 만들어 먹는 제품밖에 없었던 탓이다.
400그램? 그렇다면 그 부피는 얼마나 될까? 컵라면 중에서도 신라면처럼 작은 용기에 담긴 녀석들을 우린 흔히 볼 수가 있다. 바로 그 녀석들과 엇비슷해 보이는 크기다. 실은 괜시리 호기를 부려 보긴 했지만, 저게 과연 한 번에 내 뱃속으로 다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기꺼이 미션 수행에 돌입했다. 티스푼으로 깨작거림 없이 큰 수저로 양껏 퍼서 입안에 들이붓기 시작한 것이다. 감질나는 느낌 없이 마음껏 퍼먹을 수 있는 이 자유를 난 그토록 갈망해 왔던 게 아닌가.
내가 맛본 건 복숭아 맛이었는데, 뽀얀 요거트 안에 복숭아 과실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사실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더 없이 침샘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다 먹으니 포만감마저 느껴진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떠먹는 요거트로 포만감을 느낀다는 게 내게 있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떠먹는 요거트 제품에도 제조사의 꼼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난 뒤늦게야 깨닫게 됐다.
다름아닌 가격과 관련한 사안이다. 80그램짜리 10개 들이 가격보다 400그램짜리 요 녀석이 더 비쌌다. 차라리 80그램 짜리 10개를 구입하여 다른 용기에 옮겨 담으면 400그램짜리 두 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가격은 오히려 80그램 짜리가 더 쌌으니 가끔 세제류나 과자 따위 식품류의 제품들에서 큰 용량이 오히려 작은 용량보다 비싸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거나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이 있는데, 이 녀석도 그런 경우였던 셈이다. 미션 완수로 뿌듯함을 느낄 틈도 없이 이러한 결과는 이내 씁쓸함으로 변질된 채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진 셈이다. 즉 양껏 편하게 먹길 원한다면 다분히 비싼 값을 치러야 할 테고, 반대로 예전처럼 티스푼으로 감질나게 먹거나 큰 용기에 일일이 옮겨 담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면, 그 절반값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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