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부모 등골 빼먹는 과도한 팬심 마케팅

새 날 2015. 7. 1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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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한 초등 6년 여아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열성 팬이다.  또래들과 함께 지난해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된 2014 드림콘서트에도 다녀 온 바 있다.  올해도 같은 장소에서 행사가 개최되었다고 하니 틀림없이 참석했으리라 짐작된다.  아이돌이 출연하는 이러한 행사의 티켓값은 적어도 수만원에 달할 만큼 비싸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우상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 액수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그날 난 친구 모임이 있어 우연찮게 월드컵경기장 부근을 지나야 했는데, 아이돌을 향한 팬들의 팬심을 담은 함성 소리가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나와 친구가 머물던 그곳까지 생생하게 들려 올 정도로 현장의 열기가 대단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곳에서 다른 팬들과 함께 신나해하며 소리를 질렀을 그 아이의 흥분된 모습이 떠오르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실은 그다지 아이돌 따위에 관심이 없던 내게 틈만 나면 자신의 영웅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던 그 아이다.  공부와 관련한 얘기를 나눌 때면 시큰둥하다가도 자신의 영웅이나 그와 근접한 얘기가 나올 경우 눈이 반짝거리며 초집중하는 자세를 보이곤 한다.  아이의 소지품은 온통 아이돌과 관련한 물품들 천지다.  어디서 구한 거냐고 슬쩍 관심을 보였더니, 친구들과 교환하거나 직접 구입한다는 등 묻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여가며 구구절절 일장 연설을 풀어놓기 바쁘다.  그 어느 때보다 생기발랄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게 바로 요즘 흔히 말하곤 하는 '팬심' 아닐까 싶다.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문화 현상인 '팬덤'은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이미 오래일 만큼 보편적인 영역에 해당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이돌이 대중문화의 대세로 떠오르고 기획사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진 뒤로는, 이러한 현상마저 조직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열성적인 팬심을 활용한 기획사들의 장삿속이 도가 지나치다고 하여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 대학생 감시단이 유명 연예기획사가 운영하는 매장의 상품 가격을 공개하였는데,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가격대가 높다.  어른인 내 입장에서 보더라도 손이 덜덜 떨릴 만큼 비싼 가격대의 상품이 즐비한 데다, 지극히 소소한 상품에까지 몇 만원에 해당하는 가격표가 붙어있는 걸 보니 입맛이 씁쓸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YMCA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관련 상품을 사기 위해선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4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스티커 하나에 4만5천원, 5만5천원 머리띠, 4만9천원 짜리 달력 그리고 심지어 123만원 짜리 이어폰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제품의 종류는 다양했으며 가격대 또한 터무니없을 만큼 높았다.   

 

물론 가격이 비싼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특정 스타에 맞춰 소량 생산한 제품이기에 희소성을 갖춘 데다 품질 또한 일반 제품과 비교해 차별화된단다.  소비자들에게 있어 흔히 고가의 취급을 받고 있는 이른바 '명품'과 그 속성이 닮은 데다, 이들 명품이 일각에서는 없어서 구하기 어려울 만큼 불티나게 팔린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특별히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돈이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일 테고, 여건에 맞는 소비자만 구입하면 되는 사안이니 딱히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냐는 항변이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의 능력껏 소비하는 행위가 흠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선 해당 제품 소비의 타깃층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아이돌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연령대가 대부분 청소년들로 이뤄져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테다.  때문에 애초 이들 제품의 타깃은 청소년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청소년들에겐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다.  결국 부모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의미인데, 팬심 때문에 부모를 졸라 하나 둘 이러한 제품을 구입한 친구들을 볼 때 판단력과 자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이기에 구매 욕구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을 테고 그러다 보면 부모의 주머니가 털려나가는 악순환이 연출되기 일쑤일 테다.

 

아이돌의 인기가 부모들에겐 졸지에 비수로 돌아 오고 있는 셈이다.  그놈의 유행이란 게 뭔지 엉뚱한 부모가 고생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등골 브레이커'라 불리며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유명 브랜드의 고가 패딩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그 수준과 눈높이가 한없이 높아져가고 있다.  옷의 기능과 품질로만 봤을 때엔 당장 에베레스트산 등정에라도 나설 기세다.  기껏 학교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이런 사치는 왜 필요한 걸까?  누구를 위해?  부모들은 또 무슨 죄 때문에 이러한 유행에 함께 휩쓸려 고생을 해야만 하는가.

 

아이돌 팬심을 활용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의 어긋난 장삿속은 패딩 시리즈에 이어 또 다른 '등골 브레이커'로 진화한 채 새롭게 등극하는 게 아닐까 싶어 내심 우려스럽다.  유독 아이의 기만큼은 죽일 수 없다며 이것 저것 남들 하는 건 모두 해주고 싶은 게 대한민국 부모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기에 제아무리 비싼 제품이라 해도 눈물을 머금고 기꺼이 지갑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무엇보다 이러한 성향을 교묘히 역이용하여 이윤을 챙기려는 기획사들의 장삿속이 유난히 괘씸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다. 

 

가뜩이나 경제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여 친구따라 강남 가는 아이들이 즐비한 마당에 청소년들의 우상이랄 수 있는 아이돌을 내세워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려 함은, 그와는 관련없는 일반 청소년들의 소비문화에까지, 즉 청소년들의 소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다분하다.  건전한 소비를 권장하고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의 순수함과 부모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역이용하여 이렇듯 이윤을 남기려는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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