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괭이부리마을' 논란, 지자체 배려가 아쉽다

새 날 2015. 7. 1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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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외국인 투자가는 "한국은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라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단다.  이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 왠지 외국인이 하는 말인 데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럴까 하는 옹졸한 심리 때문에 이 말에 살짝 기분이 언짢아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기에 딱히 태클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 말 그대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긴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말인즉슨 반대의 경우 즉, 한국에서 돈이 없다면 그처럼 불편할 수도 없는 데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 너나 할 것 없이 무조건 많은 돈을 벌고자 눈을 부라린 채 수단 방법 따위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있음이리라.  실제로 이 같은 풍조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고등학생들에게 물어본 설문 하나만 살펴 봐도 우리 의식 저변에 깔린 배금주의를 결코 부인할 수가 없는 탓이다.  만약 10억 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냐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7%의 응답자가 충분히 그럴 수 있노라고 응답한 설문 결과는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비추는 잣대다.


덕분에 돈만 된다면 못 하는 행위가 없다.  비록 일부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부 조작 행위 따위가 횡행하며, 학교에서마저 시험문제를 놓고 돈 거래가 오간다.  심지어 절대로 돈으로 거래되어선 안 될 것들이 은연 중 거래되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 뒤엔 돈 문제들이 얼기설기 얽혀있기 일쑤다.  아무리 벌어도 늘 부족하고 허기가 느껴지는 돈 문제는 비단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정부나 지자체 역시 쪼들리는 재정 탓에 이의 운용에 애를 먹고 있다. 

 

각 지자체들의 재정 자립 문제가 심각해지자 여러 자구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아마도 관광객 유치 아닐까 싶다.  인천의 한 지자체가 쪽방촌의 애환을 담은 유명소설의 실제 배경인 '괭이부리마을'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체험관을 세우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대표 쪽방촌의 표본이기도 한 이곳에 2층짜리 건물을 이용해 6-70년대 생활공간으로 꾸며 하룻밤 묵으면서 옛 생활공간을 체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 담겨있다.



영화나 소설의 배경이 된 지역을 관광 상품화하여 성공한 사례는 제법 많다.  그렇다면 이 또한 그의 일환일진대 왜 논란이 되고 있는 걸까?  이를 언급한 기사들은 하나 같이 가난마저 상품화한 사례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난 지자체가 애초 가난을 상품화하려는 목적으로 이러한 체험관을 계획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싶다.  그럼 진짜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괭이부리마을에는 여전히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360여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230가구 300여명이 쪽방촌 주민으로 알려져있다.  이곳은 건물이 낡고 기반시설이 태부족하여 공동 화장실을 사용할 정도로 환경이 낙후돼있다.

 

ⓒ연합뉴스

 

그렇다.  문제의 시발점이 어디쯤인지 언뜻 보인다.  지자체의 애초 의도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옛 생활공간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체험코스로 활용하여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기특한 발상으로부터 비롯됐을 법하다.  그러나 제아무리 발상이 좋고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옳은 취지의 사업이라지만, 정작 '배려'라는 아주 중요한 현실적 가치를 배제시킨 탓에 작금의 논란을 더욱 부채질한 셈이 돼버렸다.  괭이부리마을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 않다면, 이번 계획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수백명에 이르는 쪽방촌 주민들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온 체험객들이 마을 이곳 저곳을 들쑤시며 돌아다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을 관람하게 되는 셈이니,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이곳의 주민들을 한낱 세인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게 만드는 사태를 누가 반겨하겠는가?  혹여 이러한 현실을 알면서도 작금의 계획을 추진했다면, 해당 지자체는 정말 가난을 상품화하면서까지 돈만 밝히는, 지독한 속물이 되고 만다.  아무리 재정 자립도가 취약하다 해도 설마 이렇게까지 타락하지는 않았으리라 여기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속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나치게 잔인한 결과가 되는 셈이니 말이다.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자인 벳시 스티븐슨 교수와 저스틴 울퍼 교수는 '돈이 많을수록 세계 어느 국가에서든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파악했으며, 부자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보다 실제로 더 행복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돈이 많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편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편하다 보니 삶의 여유가 생겨나게 될 테고 그로부터 행복감을 얻을 수도 있는 문제이니 결코 허튼 결과가 아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적을 경우 조금 불편할 뿐 행복감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일 수 있다.  더구나 가난하다고 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죄가 되어선 안 되며, 누군가의 놀림감이 되어선 더더욱 안 될 노릇이다.

 

때문에 난 이번 괭이부리마을 논란이 해당 지자체가 가난을 상품화하려 했다기 보다 지역 주민들에 대한 배려 부족 탓에 벌어진 해프닝이라 여기고 싶다.  지자체의 경제자립도를 키우는 일,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당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들에 대한 배려가 전제된 정책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이번 논란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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