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외국인 육아 도우미는 백인 여성만 가능하다?

새 날 2015. 7. 7. 15:09
반응형

어제자(6일) 문화일보 기사 하나가 유독 눈에 밟힙니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 가능한 육아 도우미(베이비시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언젠가부터 단순한 개념의 보모를 넘어 영어를 잘하는 원어민 육아 도우미를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더불어 백인 여성만을 전문적으로 소개해주는 중개업체들이 성업 중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많이 듣고 자라야 나중에 발음이나 독해력 따위가 좋아질 수 있다는 주변 엄마들의 확인되지 않은 입소문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일반 육아 도우미에 비해 두 세배 가량의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이를 찾는 엄마들이 많아 정작 원하는 도우미를 구하는 일조차 녹록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모양입니다.  우리의 사교육 열풍이야 자타가 공인할 만큼 극성스럽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인데요. 

 

일각에서는 영어 발음을 위해 혀 성형 수술마저 마다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하니 극성스럽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게 아님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태어난 지 불과 15개월 남짓한 영아에게까지 사교육 광풍의 영향이 미치는 이러한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실제 조기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탁월한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야말로 어이없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참고로 기사 말미에도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육아교육 전문가 안영진 교수의 말을 재차 인용해 보면, "언어능력이 발달하기 전 영아 시기에 과도하게 외국인 보모를 고용하는 경우 아이 교육에 되레 혼란을 줄 수 있는 데다, 교감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만큼 차라리 감성을 키워줄 수 있는 육아 방법을 고민하는 게 낫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 역시 육아와 관련한 또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 무조건 옳다고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육아 방법을 최종 결정해야 하는 건 전적으로 각 부모들에게 주어진 몫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곱씹어볼 필요성은 있어 보입니다.  작금의 비틀어진 현상에 자신의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보다 어쩌면 주변과의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물일 수도 있는 탓입니다.



하지만 저는 외국인 보모 고용과 관련한 소식보다 정작 다른 대목이 더욱 눈에 거슬립니다.  다름아닌 육아 도우미의 자격에 관한 사항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백인 여성만을 전문적으로 소개해 준다는 중개업체가 있다고 하는데,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인 걸까요?  해당 중개업체는 2,30대의 백인 여성만을 중개하며, 주로 영국과 캐나다, 미국 국적으로 구성돼있다고 합니다.  아시아 출신이나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부연설명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사건 하나가 떠오릅니다.  한 아일랜드 여성이 ‘아일랜드인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는 황당한 편견의 벽에 막혀 우리나라 영어학원 교사 채용에 지원했다가 퇴짜를 맞은 사실이 알려지며 인종차별 논란으로 확산돼 세계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됐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영어교사를 채용할 때 자질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국가 선호 순위에 의해 정해진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욱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입니다. 

 

ⓒ문화일보

 

같은 영어권 국가라 해도 미국과 캐나다가 1순위이고, 그밖에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최하위권에 해당한다며 우리나라의 부당한 차별대우가 사회 전체에 만연돼있음을 개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암울하기 때문입니다.  즉 피부색과 국적에 따라 그 선호도가 크게 달라져, 백인으로 이뤄진 아일랜드 등에 비해 필리핀 등 동남아나 흑인으로 이뤄진 국적 출신일 경우 선호도가 훨씬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이 아닌, 전적으로 피부색과 국적 따위의 편견에 따른 결과물입니다.

 

백인이 아닌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채용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은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외국인 영어강사를 구하는 해외 사이트 채용 공고에서 ‘백인 구함’과 같은 인종차별적 문구는 아직도 버젓이 쓰이고 있습니다.  지역, 국적, 인종, 성별, 학력 등 유달리 각종 차별이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잡고 있는 탓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유엔이 우리 정부에 대해 인종, 피부색, 국적 등으로 차별을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위배되고 있다며, 공무원, 언론, 일반 대중이 외국인 혐오증을 나타내려는 징후에 대처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나설 정도로 우리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외신이나 외국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우리나라의 인종과 국적 차별에 따른 지적이 지속돼왔습니다.  하지만 비단 외국인들의 시선이나 외신의 비난 따위가 두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백인들에게는 상당히 우호적인 반면, 동남아시아인이나 흑인들을 멸시하는 이중적 잣대를 지닐 만큼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데다, 어느덧 다문화사회로 깁숙이 진입한 이상, 이러한 사례는 갖가지 차별적 요소로 만연한 우리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곧 다가올 미래 사회의 암울한 그림자만을 드리울 뿐입니다. 

 

외국인 보모 고용은 애시당초 자신의 아기에게 훌륭한 영어 교육을 제공하려 함이 주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왜 피부색과 관련한 조건이 따라 붙어야 하는 걸까요?  살색이라는 크레파스 색깔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담겨있다는 이유로 이를 연주황으로 바꿀 만큼 사회 일각에서는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실을 우린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영아를 대상으로 하는 너무 이른 사교육 자체도 문제입니다만, 부지불식간 우리 사회에 만연돼있는 인종차별적 몹쓸 행태가 이러한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듯싶어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