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진정한 배려가 절실한 이유

새 날 2015. 7. 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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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과 두 마리의 소에 관한 일화는 지금도 널리 회자될 만큼 대중적인 이야기에 속한다.  간략히 살펴보자.

 

어느날 논길을 걷던 황희 정승은 한 농부가 누렁소와 검정소 두 마리를 이용해 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무심결에 농부에게 묻는다.  누렁소와 검정소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그를 구석으로 조용히 데려가 귓속말로 다음과 같이 답했단다.  “사실은 누렁소가 더 성실합니다.  검정소는 가끔 꾀를 부리거든요.” 

 

그러자 황희 정승은 대뜸 “아니 이런 말을 왜 이리도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묻자 농부는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면전에서 서로에 대한 평가를 하면 다 알아 듣습니다.  두 마리 모두 힘들게 일하고 있는 판국에 어느 한 쪽이 더 잘한다고 하면 못한다고 하는 쪽의 소가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했단다.  황희 정승은 이로부터 깊은 깨달음을 얻고, 이후 죽을 때까지 남의 단점이라고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황희 정승은 조선조 정치 일선에서 원칙과 소신 그리고 관용과 배려의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누구에게나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황희 정승이 근래 난데없는 수난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 탓이다.  강원도 춘천이 지역구인 김진태 의원은 지난 4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사의를 표명했던 이완구 총리 관련한 발언 중 "조선시대에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간통도 하고 온갖 부정 청탁에 뇌물에, 이런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세종대왕이 이분을 다 감싸고 해서 명재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알려진 뒤 황희 정승의 후손, 장수 황씨 대종회 등이 강력 반발에 나선 건 일종의 수순밟기다.  김 의원의 유감 표명이 뒤따르긴 했으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급기야 장수 황씨 대종회 회원들은 지난달 김진태 의원 춘천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황희 정승 폄훼 발언에 대한 김 의원의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는 한편,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본격적인 낙선운동에 돌입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비단 이번 사례뿐 아니라 그동안 김 의원의 발언이 거의 망언과 폭언 수준에 가까워 물의를 빚었던 사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때문에 그에게 과연 횡희 정승의 인품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는 게 보다 솔직한 나의 속내다. 

 

ⓒ국민일보

 

한편, 모 기업이 앞서 언급한 황희 정승의 일화를 포스터에 담아 직원들에게 배려와 칭찬을 독려하려다 되레 역풍을 맞았노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해당 포스터엔 '칭찬과 배려의 말, 우리 모두를 힘나게 합니다’란 표어와 함께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자’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나름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나, 정작 문제는 포스터를 통해 전달하려 한 메시지인, 배려에 대한 인식이나 마음 씀씀이 따위가 철저히 배제된 탓에 오히려 직원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직원을 소에 비유한 채 그처럼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는 탓이다.

 

즉 직원 입장에서 바라볼 때엔 소를 부리는 선비와 농부는 경영진으로, 그리고 누렁소와 검정소는 직원에 빗댄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아니 비단 해당 회사의 직원이 아닌, 일반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소와 같은 미물에게조차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황희 정승의 소중한 일화를 아이러니하게도 배려와 존중의 대상이 돼야 할 자신들의 직원을 일화속 미물로 둔갑시킨 셈이니, 이를 지켜본 직원들의 심기가 편하게 다가올 리가 만무할 테다.  더 나아가 회사가 평소 직원들을 포스터속 소와 비슷하게 인식하며, 그러한 속내를 은연 중 드러낸 게 아닐까 싶어 상당히 부적절한 비유 아니었는가도 싶다.

 

우린 흔히 상대 진영 서로를 존중하며 동반자로 인식하는 관계가 가장 바람직한 노사관계라 일컫곤 한다.  그러나 관용과 배려가 배제된 어쭙잖은 일화 흉내내기로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이번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자'라는 회사의 메시지는 오히려 회사 경영진이 새겨들어야 할 덕목이 돼버렸다.

 

청백리로 각인된 채 시대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흘륭한 교훈과 영감을 불어넣어주던 명재상이 한 국회의원의 돌출 발언 하나 때문에 고초를 당하더니, 이번엔 모 기업의 부적절한 비유 탓에 또 다른 형태의 수난(?)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평소 직원에 대한 기업의 인식을 은연 중 드러낸 사례로 받아들여져 씁쓸하기도 하거니와,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 해도 정작 기업 문화의 본질이 그와 다르거나 시의적절치 못할 경우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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