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숭고한 희생엔 인색, 부정부패엔 관대한 정부

새 날 2015. 7. 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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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무수한 상처와 고통의 흔적을 남긴 역대급 사건입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1년여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우린 여전히 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 인양되지 않은 선체와 풀리지 않은 진실 따위는 비단 비슷한 참사가 다시는 이땅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학수고대하는 마음뿐 아니라, 우리가 세월호를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수많은 이들에게 있어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학생들을 구하던 도중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의 김초원, 이지혜 두 분 선생님들의 순직이 계약직 교사라는 이유 때문에 인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두 교사가 공무원연금법이 정한 공무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순직 처리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기간제 교사는 정부가 아닌, 학교장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계약직 근로자로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순직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기간제 교사는 법률상 ‘공무원연금법’이 아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적용받게 됩니다. 


때문에 순직 공무원 유족들에게는 공무원연금법에 의한 순직유족연금과 순직유족보상금이 동시에 지급되는 반면, 계약직 근로자의 유족에게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유족보상연금 또는 유족보상일시금만이 지급되게 됩니다,  앞서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교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과 위에서 언급한 두 교사를 제외한 모든 교사가 순직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이는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에 따라 죽어서도 차별을 받아야 하는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비추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이에 여야 국회의원 69명은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공동발의하였습니다.  경기도의회와 서울시의회 역시 기간제 교사의 순직인정 촉구 결의안을 의결하며, 정부의 조속한 순직 처리 촉구에 나섰습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교원 및 조교를 교육공무원으로 정의하고 있는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기간제 교사 역시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공무원에 해당한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전달하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의 난처한 입장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법 적용 범주와 관련한 다소 민감한 사안도 그렇겠거니와 이와 연계된 형평성 논란의 우려도 엿보이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핑계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또 다른 사안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놓고 보건대, 결코 법 적용이나 형평성 따위의 문제 때문에 이러한 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탓입니다.  그보다는 이번 정부의 도덕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한국일보의 6일자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로 선박안전 부실관리 실태가 드러나 징역형 등 유죄를 선고 받은 운항관리자들이 선박안전기술공단에 무더기 특별 채용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건 이들의 신분이 민간인에서 준 공무원으로 격상됐다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항관리자는 승선인원, 화물 고박 상태, 평형수 상태 등 선박이 안전기준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따위를 점검하는 직종입니다.  앞서 세월호는 과적과 평형수 감축 적재, 차량 및 컨테이너 부실 고박 등이 침몰의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습니다.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실관리의 전형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마땅히 기려야 할 숭고한 희생에 대해선 사회 각계에서의 순직 인정 요구가 빗발침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고, 반면, 세월호 참사의 원인 제공에 일조하여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에 대해서는 또 다시 같은 직무에, 그것도 준 공무원으로의 승격을 통해 특별 채용하는 정부의 행태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한다거나 심지어 국가 개조까지 언급했던 대통령의 발언은 모두 공염불이었음을 입증하는 순간입니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우리 사회에 마땅히 불어넣어져야 할 의로움이나 숭고함 따위는 배척한 채 오히려 일소돼야 할 부정부패 요소들로 빈 자리를 재차 채우고 있는 형국을 보아 하니 사회 전반에 만연한 작금의 몰상식한 기운들이 괜한 게 아님을 여실히 깨닫게 합니다.  무능함과 무책임도 용서 못할 행태입니다만, 그보다는 도덕성의 치명적인 결함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비록 많이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 처리를 통해 정부 스스로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뉘우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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