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술, 너에게도 열량 표시가 필요해

새 날 2015. 7. 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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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식품은 무얼까?  커피?  김치?  라면?  그런데 예상 외의 결과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맥주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소비가 아닌 생산실적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이기에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은 감안해야 한다.  어쨌거나 반전에 가까울 만큼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언뜻 생각해 봐도 늘상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김치나 주식인 쌀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들이 유독 좋아한다는 커피 따위가 수위를 차지할 듯싶은데 말이다. 

 

이에 따르면 맥주는 지난 해 3조1937억원으로 1위에 올라 1조4589억원의 실적에 그친 소주를 가볍게 제쳤다.  그런데 2위마저 술이 차지하고 있다니 이 또한 놀라운 결과가 아닌가 싶다.  맥주와 소주에 이어 비로소 라면과 믹스커피가 그 뒤를 잇는다.  한국 사람들이 평소 이렇게까지 술을 많이 마신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고달프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삶 속에서 그나마 술이라는 기호식품이 존재하고 있기에 이를 견뎌내고 있지 않나 여겨지는 탓이다.


그런데 이렇듯 우리가 흔히 먹는 식품인 술에는 과자나 빵, 음료 같은 식품류에 어김없이 표기되어 있는 열량표시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의무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맥주·펍 협회의 의뢰로 발간된 '맥주 영양 및 열량 보고서'에 따르면 용량 330㎖ 기준 열량은 맥주 128㎉, 막걸리 139㎉, 적포도주 262㎉, 소주 374㎉ 라고 한다.  200그램 밥 한 공기의 열량이 250㎉이니 결코 만만한 수치가 아님은 분명하다.

 

한편 지난 4월 유럽의회가 술에 열량 표시 의무화 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영국 BBC발로 전해졌다.  유럽연합은 2011년부터 모든 식품과 음료에 열량 표시를 의무화한 바 있으나 유독 술만은 예외였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비만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술에도 열량을 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해지면서 취해진 조치다.  우리나라도 이의 영향권에 들어간 모양새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이 '식품 등의 표시기준'에 의거 주류에도 열량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여타 식품에 대해선 열량 표시 따위를 꼼꼼히 따져가며 구입해 오던 소비자들조차 신기하게도 정작 술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함 일색이다.  아니 술의 열량에 대해선 아예 관심조차 없는 눈치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술의 열량은 생각보다 높다.  일례로 소주 두 병을 마실 경우 거의 밥 세 공기에 해당하는 고도 열량을 섭취하는 결과와 같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마셔 오던 술이 실은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란 사실을 표시되지 않은 열량 탓에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형국이다.  술을 마시기 전 혹은 마시던 중 표기돼 있는 열량에 눈길이 머무르다 보면, 아무래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술의 양을 줄이면 줄였지 이 때문에 더 마시게 되는 현상은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의정부고 졸업사진에서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있어 주류 열량 표시는 꽤나 반가운 소식이다.  알 권리에 대한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정작 주류업계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갈수록 건강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가 자칫 주류 열량 표시로 인해 이들에 대한 판매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한껏 걱정하는 눈치다.  물론 법적으로 의무화되지 않은 탓이 가장 크긴 하지만, 이제껏 주류업계가 술에 열량 표시를 꺼려해 왔던 이유도 다름아닌 이 때문이다.

 

만일 주류업계가 우려하는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게 된다면 정부 역시 마냥 반겨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 되고 만다.  술 값의 상당 부분이 주류세인데, 이의 판매 급감은 결국 정부의 세수 감소로 직결되는 탓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으로 인해 세원 발굴에 두 눈을 부라리고 있을 정부 입장에선 난감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비록 국회에서 주류 열량 표시 의무화에 대한 발의가 이뤄졌다 해도 실제 실행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난관들은 수도 없이 많으리라 짐작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술에 대한 열량 표시 의무화를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은 상황에서 음주자들의 건강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고 주량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싶은 탓이다.  현명한 소비 행위에도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될 리는 만무하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증진하겠다며 담뱃값 인상을 꾀했지만, 실상은 금연 효과는 미미한 데 반해 세수 증대 효과만 나타나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는 것처럼 또 다시 국민 건강 따위의 어쭙잖은 논리를 들고 나와 음주를 줄이겠노라며 주류세를 올리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국민들의 반감만 더욱 깊어질 게 틀림없다.  비슷한 결과를 노리고자 함이라면 그보단 차라리 주류 열량 표시 의무화 정책이 훨씬 효과적일 테다. 

 

앞 부분에서도 언급했듯 우리 사회에서 유달리 술의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만큼 살아가는 일 자체가 버겁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때문에 정작 주류업계나 정부의 주류 열량 표시로 인한 주류 판매 급감을 두려워 하는 행위는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힘든 세상, 시원한 술 한 잔에라도 기댈 언덕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가겠는가 싶은 탓이다.  아무쪼록 주류 열량 표시 의무화가 빠른 시일 내에 정착되어 현명하고 건강한 음주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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