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황당한 스위스 관광 안내문? 네티즌 반응이 더 황당해

새 날 2015. 7. 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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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한 유명 관광지에서 아시아인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화장실 예절’ 안내문이 화제다.  세계일보 기사에 따르면 문제의 해당 안내문은 루체른 호수 인근에서 관광열차를 운영하는 한 회사가 관광객 화장실에 비치한 것으로써, 언급된 관광지는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탓에 원래 인기가 높은 곳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아시아 관광객들로부터의 인기가 더욱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문은 화장실의 올바른 사용방법과 그릇된 방법에 대해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볼 일을 본 후,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 것이며 변기물과 함께 내려보내라는 내용과 함께, 변기 위에 쪼그려 앉은 채 볼 일을 봐서도 안되고, 반드시 똑바로 앉은 채 볼 일을 봐야 한다는 내용 두 가지다. 

 

이를 본 아시아 관광객들은 황당함을 넘어 불쾌한 반응 일색이란다.  극소수의 사례를 지나치게 일반화한 데다,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을 평소 낮잡아 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탓이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왜냐하면 반드시 아시아인들을 겨냥했다기보다 출신 지역을 떠나 단 한 사람이라도 그림 속에서 제시된 그릇된 방식으로 이용하는 관광객이 있다면, 이를 올바른 방법으로 이용토록 계도하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인 데다 그다지 실례로 와닿지 않는 탓이다.  특히 휴지를 버리는 행위는 수압과 화장실의 여건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사안이기에 이에 대한 안내는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라 생각된다.

 

ⓒ세계일보

 

같은 아시아인에 속하는 내겐, 해당 안내문이 비록 아시아인을 직접 겨누었다고 하더라도, 전혀 황당하거나 불편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관광열차를 운영하는 회사 입장에서 본다면 필요에 따라 충분히 안내 가능한 사안이라 여겨지는 탓이다.  이러한 사실보다 해당 소식이 실린 기사를 향한 우리 네티즌들의 어이없는 반응이 오히려 내겐 더욱 황당하고 불쾌하게 와닿는다.  한 포털사이트의 해당기사 말미에 달린 베스트 댓글들도 그렇지만, 전반적인 댓글 분위기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화장실 예절 안내문을 통해 아시아인들을 비하하고 있다는 해당 기사를 역이용하여, 절호의 기회라도 잡은 양 일제히 여성 비하에 나선 일부 네티즌들 때문이다.  '김치년', '한국 계집' 등 흔히 사용돼 오던 여성 비하 및 혐오적 표현을 총 동원하여 국제적인 망신을 시키고 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퍼뜨리며 여성들을 낮잡느라 여념이 없다.  틈만 나면 여성을 비하하기 바빴던 일부 세력이 또 다시 기회를 포착한 듯싶고, 이를 놓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근래 남성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익히 모르는 바는 아니다.  과거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격차가 상당했으나 최근 들어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짐과 동시에 그 차이가 크게 줄어든 탓에 남성들이 느끼는 상대적 불안과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만큼은 분명할 테니 말이다.  청년실업이 어느덧 사회 문제로 대두되다 보니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무언가를 핑계 삼거나 제물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엿보이고, 가뜩이나 과거에 비해 그 위상이 점차 높아지며 남성들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여성들을 그 해코지 대상으로 삼은 경향이 크다.  일례로 자신들이 취업을 못하고 있는 현상을 순전히 여성들 탓으로 돌리는 행위 따위 말이다. 

 

ⓒ한국일보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들이 생각하는 수준만큼 높아진 게 사실일까?  성별 임금격차를 한 번 살펴보자.  우리의 그것은 OECD 회원국 중 14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OECD 평균에 비해 무려 20%포인트 가량의 큰 격차다.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고작 63만4천원을 벌어들인다는 의미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30대 공기업 신입사원 중 여성은 22.7%이며, 30대 대기업의 여성 신규채용은 31.8%에 그친다.  그마저도 출산과 육아 등 경력 단절 여성들이 많아 기업의 여성 고위직 비율은 고작 11%로,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중 최하위다.



남성이 여성을 공격하거나 비하하는 데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무시 못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며 여성 혐오를 암시하고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는 듯한 웹툰이 제재는커녕 버젓이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시도 때도 없이 여성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을 내뱉기 일쑤다.  여성들의 경우 토론을 하면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아몰랑' 하고 내뺀다며 조롱한 데서 빗댄 '아몰랑', 지난 5월 '여성시대' 커뮤니티 사태가 불거진 이래 이러한 이른바 '아몰랑'으로 대변되는 여성비하적 표현은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어느덧 일상이 돼버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는 남성들의 편견과는 달리 여전히 하위권을 맴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42개국 중 117위에 랭크돼 있다.  우리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믿는 양성평등과 사회 현실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남성 본위의 분위기가 여전한 사회에서 순전히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엔 우리나라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그것을 위협해 올 만큼 크게 높아진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현실에서의 객관적인 수준은 이렇듯 바닥권을 하회하고 있는 셈이다. 

 

인권 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성 차별적인 혐오 표현이 곧 범죄라는 인식이 늘 함께한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 사회, 그와는 거리가 멀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이 많이 바뀐 것처럼 보여도, 지표와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남성 본위의 사고는 여전히 본질적인 변화를 꾀하지 못한 채 여성을 향한 피해 의식만 키우며 오히려 이번 스위스 관광지 '화장실 예절' 안내문의 사례처럼 기회가 포착될 때마다 감춰놓았던 본질을 드러내기 일쑤다.  성평등이 요원한 사회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행위는, 양성간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사회의 안정을 해할 만큼 치명적인 요소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여성의 존엄을 바로 세우는 일이야 말로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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