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과, 대중의 좌절이 두려운 이유

새 날 2015. 7. 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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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제공 의혹 사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해 온 검찰이 리스트에서 언급된 8인 중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 두 명만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2012년 새누리당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서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고, 특별사면 의혹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인사에게 구체적인 청탁이 전달되거나 금품을 건넨 단서 따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의 5억원 수수 의혹을 발표하며 물타기를 시도한 정황이 읽힌다. 

 

특별수사팀까지 꾸려가며 80일이 넘도록 강도 높게, 물론 실제로 그랬는지는 우리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행된 수사였건만 커다란 기업체를 운영하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며 국민적 의혹으로까지 불거졌던 사건 치고는 그 결말이 무척이나 씁쓸한 데다 허탈하기까지 하다.  특히 정권 실세랄 수 있는, 리스트에 오른 친박 핵심 인사들에 대해선 모두 무혐의 처리하거나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건 지극히 편향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여지로 읽히게 하는 대목이자, 결과적으로는 검찰이 이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 돼버렸다. 

 

ⓒ뉴스1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종결된 수사 결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난 애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공정한 수사 따위를 바랐던 자체가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찌감치 검찰 수사가 진행되기 전부터 요구돼 왔던 사안이긴 하지만, 예상으로부터 단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이번 수사결과에 대해 특검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검찰이 제 역할을 못하니, 아니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음이 보다 적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러한 결과는 또 다른 정쟁의 빌미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보다 나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다름아닌 대중들의 반응이다.  뻔한 결과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거나 권력 지형에 따라 수사 방향이 그때 그때 달라지는, 전형적인 '정치 검찰'을 탓하는 반응 일색이다.  그나마 이런 식으로라도 하소연하는 이들은 적극적인 성향의 부류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작부터 체념해 오던 터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 전반엔 무기력감이 짙게 배어있다.

 

이러한 좌절 분위기는 언젠가부터 일상이 돼버린 듯하다.  이명박 정권시절부터 다져온 정권 친화적 언론 지형은 박근혜 정권의 앞길에 탄탄대로를 깔아 놓으며, 이를 기반으로 국민들에겐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 놓은 채, 개인들의 모든 역량을 그저 먹고사니즘에 올인하도록 유도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관심 밖이었던 정치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야당에는 전가의 보도인 종북 프레임을 씌워 분열을 조장하고,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있던 약한 연결 고리마저 끊어 특유의 야성을 잃게 만들었다. 

 

그동안 국가권력기관의 대규모 조직적인 선거개입을 통한 부정선거에 대해서도 우린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눈 감아오기 바빴고,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터졌지만, 내가 직접 당한 일이 아니었기에 혹은 마찬가지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올바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 애써 이를 모른 척 해 왔다.  어느덧 몸에 착 감길 만큼 좌절이 익숙해졌다.  좌절의 일상화다.  위정자들이 제아무리 부정한 짓을 저질러도 나랏일을 하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오히려 동정표를 던져주거나, 정치적 지형이 원래 그런 걸 어쩌겠나 싶은 심정으로 우린 자포자기하기 일쑤다.



반면, 선거에 나서기만 하면 백전백승을 거두고 있는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야당을 안보나 종북 프레임에 가둬놓아 힘 한 번 제대로 쓰지도 못하게 만드는 건 남북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이들에겐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 사이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를 향해 쓴 소리를 마구 던지고, 자신의 계파 소속이 아닌 당 대표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대놓고 퍼부을 수 있는 배경엔 이러한 강한 자신감이 짙게 깔려 있는 탓이다.  즉 어떠한 악조건의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승리만큼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하다. 

 

물론 대통령의 이번 무리수는 중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집권 3년차,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는 레임덕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속내일 수도 있겠고, 미래 권력을 향한 밑그림 그리기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하여 아주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위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감정적인 표현 일색인 탓이다.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로 이어지는 정치 구도뿐 아니라 언론 또한 우호적으로 길들여 놓은, 지극히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운동장에서 결국 입법부면 입법부, 행정부면 행정부를 지금처럼 앞으로도 한동안 그들이 장악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겐 해당 발상만으로도 공포스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야당과의 싸움보다 오히려 여권내 계파간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과 같은 지형에서는 빨간색 정당이라고 하면 누가 나와도 당선되는 선거 구도인 탓이다.  즉 우리가 흔히 이명박근혜 정권이라 표현하며 이전 정권과 현 정권을 연장선상에 놓고 바라보듯, 그들의 머릿속에선 권력을 쥔 자들의 정당 색상은 앞으로도 빨간색이 계속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고, 이전 정권에선 친이계가, 현 정권에선 친박계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듯, 야당과의 싸움보다 자신들의 계파간 싸움이 진검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좌절에 익숙해져 있을 경우, 해당 시나리오는 실전으로 다가올 개연성이 매우 높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친박계와 비박계의 다툼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게 된 건 바로 이러한 정치 지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결과에 다름아니다.  국민들은 좌절감과 무기력감으로 인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고, 어느덧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사이 저들은 한껏 유리해진 정치 지형을 마음껏 유린하며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아닌, 자신들의 계파간 경쟁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우린 앞으로 이러한 방식의 새누리당 장기집권을 그저 넋 놓은 채 씁쓸하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작금의 무기력과 좌절이 두렵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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