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잔혹 동시 논란, 패륜인가 마녀사냥인가

새 날 2015. 5. 7. 11:06
반응형

10살 초등학생이 쓴 잔혹 동시가 실린 동시집 '솔로 강아지'를 출판사가 전량 회수 및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해당 시를 쓴 아이의 부모가 출판사의 책 회수 조치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해당 동시집의 회수 및 폐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해당 시로 인해 우리 사회에 던져진 충격파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던 터라 난 출판사의 회수 조치가 마땅하다고 여겨오던 터인데, 아이의 부모가 법적 조치까지 취해가며 이에 대해 극구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니, 무언가 엇박자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의 부모는 시를 시로 본 것뿐이고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며, 이번 잔혹 동시 논란에 폐기로 맞서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난 정말로 의아했다.  만약 내가 아이의 부모였다면 출판사의 조치에 대해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미안하다며 뭇사람들에게 사죄를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아이의 부모는 동시집에 수록된 58편의 시 가운데 문제가 된 작품은 오로지 한 편이라고 했다.  때마침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 문제가 된 '솔로 강아지' 시집에 실린 그 아이의 다른 시 몇 편이 올라왔길래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래는 아이의 시 일부다. 



표범

 

사람들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표범 

맹수지만 사람에게 길들여져

자기가 누군지 잊어버린 

이제 더 이상 고개를 들 수 없겠네

무엇이 기억나는지 

눈 밑으로 눈물이 흘러 생긴 삼각형

얼굴은 역삼각형 

눈물과 얼굴이 만나

삼각형이 되어버린 표범

 

 

솔로 강아지

 

우리 강아지는 솔로다

약혼 신청을 해 온 수캐들은 많은데
엄마가 허락을 안한다

솔로의 슬픔을 모르는 여자
인형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는 침이 묻은 인형을 버리려한다
정든다는 것을 모른다

강아지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있다
외로움이 납작하다

 

 

겨울 선물

  

찬바람이 불어오네

겨울이야 겨울

겨울잠 자러 가던 토끼가

흰 앙고라 장갑을 주고 가네

 

꽁꽁 얼음이 어네

겨울이야 겨울

겨울 잠 자러 가던 박쥐가

까만 부츠를 주고 가네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들리네

겨울이야 겨울

겨울 잠 자러 가던 무당벌레가

알록달록 목도리를 주고 가네

  


착한 오빠

 

오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내 친구가 오빠의 머리카락을 한참 잡아당겼기 때문에 태권도 사범단이면서도 때리는 대신 말없이 참는 오빠 어떤 아이가 날 놀렸을 때 오빠는 그러지 말라고 말려 주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친구 앞이었기 때문에 남매란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피가 섞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플 때 같이 아프다는 것일까

 

 

내가 시를 잘 쓰는 이유

 

상처딱지가 떨어진 자리
피가 맺힌다

붉은 색을 보니 먹고 싶다
살짝 혀를 댄다

상큼한 쇠맛
이래서 모기가 좋아하나?

나는 모기도 아닌데
순간 왜 피를 먹었을까

몸속에 숨어 사는 피의 정체를
알아보려면
상처딱지를 뜯고 피를 맛보아야 한다

모기처럼 열심히 피를 찾아야 한다
모든 시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비록 내겐 문학적인 소질이나 감성 따위가 풍부하진 않지만, 언뜻 봐도 아이의 글 솜씨가 상당하다는 느낌이다.  10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지경이다.  잘은 몰라도 이쯤되면 시에 관한 한 영재 급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문득 아이 부모의 행동이 결코 과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이의 문학적 감수성을 고려해볼 때 논란이 된 '학원 가기 싫은 날' 역시 우리가 지닌 예의 그 삐딱한 시선에서 쓰여진 게 아닌, 순전히 아이의 다양한 문학적 감수성에 의한 표현 양식 중 하나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내게 도끼눈을 부라린 채 달려들 어른들이 꽤나 많을 줄로 안다. 

 

이 대목에서 섬뜩하고 패륜적인 표현 일색의 시가 무슨 문학적 감수성이냐며 우기실 분들께 하고 싶은 말 한 가지가 있다.  누구든 상상 따위 하며 살지 않나?  때로는 누군가에게 입밖으로 꺼내기 민망할 정도의 망측한 상상도 곧잘 하지 않느냐 말이다.  호러물이나 심지어 포르노 따위의 작품들도 어찌 본다면 모두 그러한 상상속 일탈을 표현하여 어른들의 대리만족감을 충족시키려 함이 존재의 이유 아니었던가?  아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지 않는가.  상상엔 국경이 없고 누구에게든 자유일 테니 말이다. 

 

북한에 가서 김정은을 만나 함께 대동강 맥주 한 잔 마시는 일 따위를 상상하는 행위에 대해 우린 아무런 문제 삼지 않는다.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다.  실제 행위로 이어질 때 국가보안법이란 사회적 틀에 의해 제재를 받을 뿐이다.  아이라고 하여 언제나 맑고 투명한 상상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끔찍한 상상을 하지 말라는 법 역시 없다.  이 아이는 '시'라는 도구를 이용해 머리 속 상상을 밖으로 풀어헤쳐 놓았을 뿐이다.  물론 끔찍한 삽화를 그려넣어 섬뜩함을 제대로 불어넣은 출판사의 판단 오류가 이번 논란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지만 말이다.  만일 이러한 삽화가 없었고, 굳이 언론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그저 아이의 다양한 표현력 중 하나로 그칠 만한 사안 아니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한 번 얘기해보자.  '학원 가기 싫은 날'이 패륜인가 아닌가?  물론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를 시라는 문학 작품의 표현 양식이 아닌, 단순히 범죄 행위를 예고한 끄적임 중 하나이거나 무언가 특수 목적을 띤 행위라면 패륜에 상당히 근접한 게 분명 맞을 테다.  진짜 패륜이 되려면 상상으로만 그치는 게 아닌, 평소의 행동이나 실제 비슷한 행위로 옮겨질 때를 일컬음일 테니 말이다. 

 

언론보도는 마녀사냥에 가깝다

 

어른들에겐 언론에 의해 잔혹한 묘사만이 부각된 상황에서 오로지 패륜적인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을 테고, 아이가 지닌 다른 면모에 대해선 전혀 바라볼 수가 없었던 측면이 강하다.  같은 사물을 놓고 보더라도 어떤 특정 부위만 부각시켜 놓을 때와 전체적으로 조망했을 경우, 그 해석이 천양지차가 되는 형국과 똑같다.  즉 나무만 바라보고 숲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는 그저 상상의 나래를 밖으로 펼쳤을 뿐이다.  우리가 받아들인 것처럼 실제로 패륜적인 아이였다면 아이의 부모가 언급하고 있듯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

 

오히려 우리 어른들의 편협함이 아이의 장래를 망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잘못이 있다면 애초 아이의 재능이나 여타의 면모는 도외시한 채 오로지 문제가 될 법한 측면만 부각시켜 특종처럼 보도한 언론에 원죄가 있으며, 이에 대해 아무런 합리적인 의심없이 그저 부화뇌동하기 바빴던 나를 포함한 우리 어른들이 공범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이번 논란 역시 마녀사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를 통해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 재차 부각되긴 했지만, 그의 반대급부로 해당 동시를 쓴 아이와 부모는 엄청난 상처를 입은 채, 자칫 아이의 뛰어난 재능마저 썩히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놀지 못하도록 학원 지옥에 던져놓은 채 물리적으로 가둬놓더니, 이젠 아이들의 생각과 상상 그리고 표현마저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고 있는 게 아닌가.  안타깝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