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형마트 치킨' 재등장이 반가운 이유

새 날 2015. 5. 1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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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국민간식'으로 떠오른 치킨 가격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른 채 한없이 치솟고만 있다.  BBQ가 지난달 새롭게 출시한 치킨 한 마리의 가격은 19,900원이란다.  사실상 2만원대 가격의 출현인 셈이다.  차마 2만원으로 올리기엔 가격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한 탓인지 유통업체 등에서 흔히 활용돼 온 심리학적 꼼수마저 동원됐다.  물론 심리적 마지노선인 만큼 저항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조만간 2만원대 가격의 치킨 출현은 시간 문제일 듯싶다.

 

ⓒ세계일보

 

치킨의 주 재료인 닭고기 값은 자꾸만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제품 가격 자체가 오르는 현상은 그야말로 기이하다.  치킨은, 대한민국이 '치킨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소비자 모두에게 사랑 받는 친숙한 몇 안 되는 먹거리 중 하나다.  '치느님'을 신봉하는 소비자가 넘쳐나는 이상 1997년부터 아성을 지켜 온 외식 메뉴 부동의 1위 자리는 여전히 굳건하다.  시장 규모는 연간 4조 원에 육박하며 프랜차이즈 회사만 250여개, 가맹점은 3만개에 달한다.  독립점포나 노점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수는 4만개를 훌쩍 넘는 규모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실제로 어느 정도의 닭고기를 소비하고 있는 걸까.  농촌진흥청이 축산물 소비촉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2.6%)이 일주일에 1회 이상 닭고기를 먹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연간 소비로 따지자면 대략 12.45kg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렇듯 치킨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상당히 가까운 먹거리인 탓에 그 어느 제품보다 가격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2010년 '통큰치킨'을 내놓으며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던 롯데마트가, 지난달 마트 창립 17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6,500원짜리 '큰 치킨'을 선보인 바 있다.  이 대목에서 치킨 업계와의 묘한 신경전이 벌어졌을 것이란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해당 행사는 '치킨 2만원 시대에 소비자 가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라는 부연 설명이 덧붙여졌으며, 일주일 간 한시적으로 판매됐다.  

 

소비자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통큰치킨' 행사 당시와는 반응이 영 딴판인 셈이다.  '통큰치킨'은 골목상권 지킴이를 자처한 소비자들의 여론 뭇매에 밀려 결국 일주일만에 판매를 중단하게 됐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 포털 사이트가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소비자들의 속내가 엿보인다.  무려 77%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소비자 가격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냈으며, 골목상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는 고작 23%에 불과했다.  한시적인 판매가 아닌, 향후 공식 대형마트표 치킨 탄생의 가능성을 뒷받침하거나 한층 앞당기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동안 가격 인상에만 골몰해 온 치킨 업계에겐 긴장해야 할 대목이자 소비자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네이트 설문 캡쳐

 

이러한 극과 극의 반응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골목상권을 시시각각 위협해 온 대형마트를 향한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5년 사이 바뀌기라도 한 때문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테다.  아무래도 가격 요인을 무시할 수가 없는 탓이다.  때문에 최근 연이어 상승한 치킨 가격은,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스스로 자충수를 두고 있는 상황으로 읽힌다.  2만원대의 터무니없는 치킨 가격 앞에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골목상권 지킴이로 나설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JTBC

 

그렇다면 치킨의 주 재료인 닭고기 값은 갈수록 떨어져 10년이래 최저인 상황에서 어찌하여 치킨 가격은 상승만을 거듭하고 있는 걸까?  당사자인 치킨 업계 측에선 인건비나 임대료를 그 요인으로 꼽고 있다.  물론 그러한 연유가 가격 상승에 한 몫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듯싶다.  치킨 업계 간 빚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이 어느덧 무리한 스타 마케팅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가수를 치킨업계 모델로 대거 앞세우던 추세가 근래엔 톱스타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그만큼 더욱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의미일 테다.  BBQ는 수지와 이종석을, 교촌치킨은 이민호, 그리고 BHC는 전지현을 앞세웠다.  치킨 가격 상승의 주 요인은 인건비나 임대료보다 결국 이러한 값비싼 스타 마케팅 때문으로 파악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에 지갑을 여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다.  그러한 제품과, 품질보다 엉뚱한 곳에 쏟아부은 비용 탓에 가격이 껑충 오른 제품을 사이에 두고 고민할 소비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소비자라는 경제 주체는 사실 매우 간사하다.  이번 사례를 통해 보듯 골목상권 살리기 등의 대의명분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한 명분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적어도 합리적이지 않으며 납득할 수도 않는, 요상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현상부터 없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는 탓이다. 

 

이미 심리적인 마지노선에 육박한 현재의 치킨 가격은 누가 보더라도 마뜩잖다.  아마도 보다 솔직한 소비자의 속내는, 치킨을 놓고,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와 자본력 풍부한 대형마트 간 '치킨게임'이라도 벌여, 가격을 대폭 하향 평준화, 아니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으로 확 끌어내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을 테다.  이는 그동안 골목상권 지킴이를 자처해 온 소비자를 기만한 채, 제품의 품질 향상보다 광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며 마치 관성처럼 가격만을 대폭 인상해 온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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