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하다하다 이젠 식판마저 '종북' 덧칠인가

새 날 2015. 3. 3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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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가 무상급식운동단체와 학부모들을 향해 종북 좌파 집단이라는 색깔 공세를 펼쳤다.  경상남도는 지난 30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종북세력을 포함한 반사회적 정치집단의 정치투쟁 행위를 일절 받아들이지 않겠다.  국책사업의 현장에서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야기했던 반사회적 정치세력이 또다시 불순한 정치적 목적으로 도정을 훼손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라며 그들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최근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방침에 맞서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등교거부, 촛불집회, 급식비 거부 등의 행동이 전면적인 시민 저항 운동으로 확산되는 와중이었고, 이날은 때마침 홍준표 지사가 해외출장을 마치고 도청에 첫 출근한 날이기도 하다.  우선 학교에 "밥 먹으로 가느냐"며 아이들 식판을 다짜고짜 엎어버린 도지사의 돌출 행동에 맞선 학부모들의 생활 속 저항 운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로 읽힌다.  때문에 이를 정치 투쟁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과 더 나아가 그들을 종북좌파 정치집단이라 매도한 사실에 대해선 비록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척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따위의 복잡한 정치적 논리는 여기선 차치해 두자.  생각해 보라.  전국 어느 지자체에서도, 하물며 대한민국 최고 부자 동네라 일컫는 서울 강남에서조차도, 여전히 무상급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유독 자신들의 거주 지역만 뜬금없는 도지사의 돌출 행동 탓에 추가로 급식비가 지출되어야 하는 상황이니 가뜩이나 국가 경제가 어려워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얌전히 이를 받아들일 가정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쯤되면 식판을 든 채 거리로 뛰쳐나오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물론 경상남도의 처지가 무척 곤혹스럽긴 할 것 같다.  학부모들의 집단 행동이 당황스럽기도 하겠거니와 거북하게 와닿으리라 짐작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홍 지사가 벌여 온 무리수의 대가이자 자업자득에 다름아니다.  작금의 종북몰이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향해 일삼던 우리 사회 일각의 몰상식함과 맞닿아 있다.  세월호가 지겹다며 그들을 향해 빨갱이라 손가락질을 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교황에게 세월호 노란 리본을 떼라고 하거나, 단식 농성 현장으로 찾아와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던 그 몹쓸 기운이 경상남도에서 재차 발현되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적 논란과 쟁점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 및 집회 참여 따위의 시민 행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자유이자 권리에 해당한다.  헌법에서도 이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활발해야만 보다 건강한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을 테다.  현재 경상남도 도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부모들의 다양한 의사 표현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방증이다.  헌데 이를 두고 반사회적 행위 내지 종북좌파라 일컬음은 결국 도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재갈을 물리는 격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우리 정치권에선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늘상 꺼내오던 카드가 다름아닌 '종북몰이'이다.  홍 지사도 걸핏하면 '종북좌파'를 운운해 오던 터다.  때문에 이번 종북좌파 논란은 비록 대변인의 입을 빌려 표현하는 모양새를 갖췄지만, 결국 홍 지사로부터 비롯됐음직한 정황으로 읽힌다. 

 

하지만 아이들 식판을 들고 항의하러 나온 학부모들에게마저 종북좌파로 덧씌우려 함은 결국 도지사로서의 지위를 망각한 행위에 다름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당리당략을 위해 툭하면 사용해 오던 이념 갈등의 정치적 술수를 도민에게 그대로 재활용한 행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다하다 이젠 아이들 밥먹는 식판에까지 종북 낙인을 찍어야 하는가?  그동안 이념공세를 통해 수세로부터 극적으로 벗어났던 학습효과가 너무 뛰어났던 탓인지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다.  이러한 무리수는 결국 홍준표 지사가 벌여 온 일련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정당성이 없음을, 아울러 이를 꿋꿋하게 밀어붙일 자신감조차 부족함을 자인하는 꼴이 아니면 그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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