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난 그저 인도 위를 편히 걷고 싶을 뿐

새 날 2015. 4. 2. 11:39
반응형

요샌 길을 걷는 행위조차 힘에 겹거나 피곤한 일이 돼버렸다.  보행자를 위한 인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면도로를 걸을 때면 수시로 지나다니는 차량 때문에 걸음을 멈춘 채 이들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차량을 피해 요리조리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차량이 급격히 증가한 탓이겠거니 여기고 있지만, 실은 매우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난 웬만하면 이면도로는 피하고 인도가 마련되어 있는 대로변을 이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인도라고 하여 별반 다르지가 않다.  분명 사람이 걸으라고 마련된 곳이건만, 어느새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주요 통행로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세 사람 정도가 나란히 걸으면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부족할 만큼 가뜩이나 좁아터진 인도를 각종 배달용 오토바이들이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자전거가 수시로 딸랑이를 울리며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해 오고 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오토바이를 이용해 명함용 전단을 각종 상점 앞이나 길 바닥에 뿌리는 치들도 있다.  그야말로 게임 속 위험천만한 던전 내지 지뢰 피하기 속으로 시민들을 내던져놓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경찰도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 눈치다.  매년 봄철이 돌아올 때마다 오토바이 인도 주행 단속 기사를 봐 왔던 터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청은 지난달부터 서울 평화시장, 용산 전자상가 등 오토바이 운행이 많은 지역 654개소를 '이륜차 질서 확립존'으로 지정하여 특별 관리 중이라고 밝혔다.  단속에 앞서 '인도주행 금지' 플래카드를 2천784개소에 설치하고, 언론과 도로전광판 등을 통해 법규 준수를 홍보했단다.  그 결과 2천508건을 적발하였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단속 건수인 240건보다 10배나 많은 수치란다.  덕분에 오토바이의 인도주행 교통사고도 작년 같은 기간 21건에서 올해 13건으로 38.1% 급감했다는 게 경찰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경찰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실생활 속에서의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인도 위를 걷는 행인들은 여전히 던전 속에 내던져진 상황으로,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 일상 생활 자체가 위태롭기만 하다.  경찰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매년 캠페인을 개최하여 특별관리할 만큼 정성을 쏟고 있는 상황인 데다, 통계 결과를 놓고 볼 때 일견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걸까?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치안은 심각한데, 경찰은 여전히 통계 숫자놀음에 매달려 있는 탓이다.  비단 이번 건만이 아니더라도 경찰의 숫자놀음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는 여러 영역을 통해 이뤄져 온 정황이 짙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 교통사고 통계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경우를 들 수 있다.  경찰은 최근 교통사고가 감소하는 추세라고 발표한 바 있다.  경찰의 설명을 그대로 따르자면 현장 단속을 철저히 해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얘기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소지가 있다.   

 

ⓒ스포츠동아

 

보험회사에 접수된 교통사고 현황을 살펴봤더니 2011년 이후 교통사고가 크게 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사이 경찰에 접수된 교통사고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감소하는 추세다.  근래 자동차 운전자들은 교통사고 발생 시 경찰에 접수하기보다 보험회사에 사고 처리를 떠넘기는 경우가 훨씬 많아지고 있는 탓이다.  결과적으로 교통사고가 줄은 게 아니라 오히려 크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경찰은 이러한 엉터리 통계 결과를 놓고 자신들의 성과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던 셈이다. 

 

오토바이 인도 주행 단속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이 내세우고 있는 통계는 시민들의 체감 치안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난 주변에서 인도 주행 오토바이 단속 현장을 단 한 차례도 목격한 바 없다.  오히려 오토바이들은 더욱 속도를 내며 보행자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정 지역 위주로의 단속 탓이다.  아울러 단속 건수를 10배 늘렸다는 식의 실적 발표가 자랑거리가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경찰의 고질적인 문제인, 형식적인 실적 위주의 단속에 치우친 결과로 비치는 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느끼는 생활 속 위협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도 위의 흉기, 오토바이 질주를 막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는 게 정답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때문에 적어도 캠페인 기간만이라도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말고 전국적이며 전방위적인 단속을 통해 오토바이 운전자들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야 제대로 된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캠페인 기간을 연중 한 차례, 지금처럼 몇 달씩 지속할 게 아니라 짧게 하더라도 불시에, 그리고 수시로 자주 해야 할 필요성마저 엿보인다.  

 

물론 많은 인력과 예산이 뒤따르는 일이라 현실적으로 매우 쉽지 않으리란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체감 치안은 전혀 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예의 통계 숫자놀음에 매달린 채 자신들의 실적에 대해 자화자찬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간 안쓰럽지가 않다.  보여주기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시민에게 보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다가갈 때에만이 비로소 치안 체감은 높아질 수 있을 테다.  난 그저 인도 위를 편히 걷고 싶을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