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저먼윙스 항공기 추락' 짚어봐야 할 점 몇가지

새 날 2015. 3. 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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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맥에 충돌하여 150명이 숨진 저먼윙스 여객기 참사의 원인은 안드레아스 루비츠 부기장의 고의적인 추락 사고로 압축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기장은 기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종실 문을 잠근 채 여객기의 기수를 알프스 산맥으로 돌려 시속 700킬로미터라는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그대로 급강하, 알프스에 충돌했다고 한다.  이른바 자살 비행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사고기의 잔해는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물론 보다 정확한 사건의 추이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알 일이다.  다만, 사고기 음성녹음장치(CVR)와 부기장의 과거 행적 그리고 그가 앓던 병의 증상 등을 종합해 볼 때 정황상 이번 참사의 결정적인 이유는 자살 비행임이 유력해 보인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항공기 안전 문제가 어느덧 테러로부터 조종사의 정신적인 문제로까지 외연을 확장해가는 모양새다. 

 

항공기가 이륙한 뒤 승객의 안전과 운명은 전적으로 조종사 등 승무원들에게 맡겨진다.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생명이 조종사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의미이다.  우린 자동차를 운전할 때조차도 운전대를 잡은 사람에게 음주 등 특별한 이상은 없나 졸립지는 않은가를 확인하고, 운전 중인 상황에서도 수시로 그의 상태를 체크하고 또 다시 체크한다.  하물며 수백명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항공기의 경우라면 조종사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는 어떠한 상황보다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조종사의 임용 자격과 훈련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운 이유 역시 이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근래 사회가 워낙 복잡다단해져가는 상황이라 조종사의 입문 과정보다 오히려 조종사가 된 이후 훨씬 더 엄격한 관리가 요구되어진다.  우리 항공법에 따르면 조종사는 1년에 한 차례 항공신체검사를 통해 신체 및 정신적 상태가 항공업무 수행에 적합한지를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50세 이상은 그 주기가 더욱 짧아 6개월 단위로 이뤄진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20년에는 우울증이 심장병 다음으로 많이 앓는 질병이 되어 인류의 삶을 위협할 것이며, 2030년에는 고소득 국가에서 부담 1위의 질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2012년 5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최소 3억5000만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매년 100만명 이상이 이 때문에 자살하고 있단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각국 질병 부담 중 13%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흔히 '마음의 감기'로 표현하며 가볍게 여겨오던 우울증이 우리의 삶 자체를 피괴할 만큼 위협적인 질병으로 성장해 온 셈이다.  

 

우울증이라는 질병 앞에선 투철한 직업 윤리 의식 따위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듯싶다.  지난 13일 밤 전남 신안 가거도의 응급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비행에 나섰다가 부근 해상에서 추락한 헬기의 기장은 최후의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단 해당 건이 아니더라도 가끔 발생하는 항공기 등 추락 사고의 경우 민가나 건물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비행체의 조종사가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은 경우를 우린 흔히 봐 왔다.  이는 평소 그와 관련한 훈련이 철저히 이뤄져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그만큼 조종사들의 직업 의식이 투철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면 저먼윙스 여객기 조종사의 경우 아무리 투철한 직업 교육을 받고 몸에 체화된 상태라 해도, 이미 조종간을 잡은 이상 병적 증상에 의한 돌출 행위를 막을 방도는 딱히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사전에 그로 하여금 조종간을 잡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었을 테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먼윙스 부기장의 언론에 보도된 근래 진료 기록으로 비춰볼 때 항공사에서 그의 비행을 사전에 막지 못한 사실이 가장 뼈아프게 다가온다.  아울러 항상 2명 이상의 조종사가 머물도록 한 규정이 적용 중이었다면 이러한 비극을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과적으로 그마저도 아쉽다. 

 

ⓒ연합뉴스

 

자살 비행 사건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03년에서 2012년까지 발생한 2,758건의 각종 항공사고 중 8건이 자살비행으로 결론난 바 있다.  비록 흔한 사건은 아니지만 간혹 빚어져 온 일인 데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신질환이 갈수록 늘어가는 시대적 조류와 한 번에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위협적인 상황 앞에서 이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911 테러 이후 각국 항공사들은 테러 행위가 가능했던 이유가 조종실에 조종사가 혼자 있는 것을 허용하는데 있다고 보고 '2인 조종규정' 의무화를 추진해 오던 터다.  특히 미국의 경우 여객기 조종실 문을 어떤 충격에도 밖에서 열지 못하도록 보안 강화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저먼윙스 항공사는 이번 사태가 불거지고 난 뒤에야 '2인 조종규정'을 도입키로 했단다.

 

각국 항공사 역시 저먼윙스 사태 이후 관련 규정을 속속 도입하거나 강화하고 나섰다.  영국과 캐나다, 노르웨이, 벨기에, 에미리트항공 등이 이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며, 중국은 조종실 최소 두 명 근무 규정 이행을 강화하기로 했단다.  유럽항공안전청 역시 항공기 운항 내내 조종실에 승무원 두 명이 함께 있도록 권고키로 했단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제주항공은 조종사 2명이 있다가 1명이 자리를 비울 경우 객실 승무원 1명이 조종실에 들어와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나머지 항공사들은 이러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의미이다.

 

근래 빚어진 잦은 항공사고는 대부분 저가 항공사로부터 비롯됐다.  특히 이번 저먼윙스 사태로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온 저가 항공사의 안전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르는 게 아닐까 싶다.  운항 단가를 최대한 낮추는 대신 항공기의 가동률을 높이고 부가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국내 저가 항공사들에겐 이번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사고의 여파가 어떤 형태로든 악영향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향후 조종사에 대한 관리 감독이 강화될 것이란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고, 이 경우 고스란히 항공사의 비용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클 테니 말이다.  기내에서 소주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저가 항공사의 상황이 열악한 탓에 과연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헤쳐나갈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승객의 기내 난동이 여객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 요인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번 저먼윙스 사태를 통해 조종사 또한 항공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으며, 만약 그럴 경우 그 어떠한 상황보다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정기적인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 조종사는 신체검사 전 정신 이상이나 심리적 문제, 알코올·약물 남용, 자살시도 등에 대해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작정하고 숨길 경우 마음이 앓고 있는 병을 사전에 인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이번 저먼윙스 사태를 통해 무엇보다 중요해진 조종사의 정신상태 관리에 문제는 없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할 테고, 필요할 경우 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사태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라도 항공기 조종실에 항상 조종사 두 명 이상이 머물도록 하는 엄격한 규정을 모든 항공사가 마련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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